한 사회의 사람들이 교육을 더 많이 받는다면, 더 살만한 세상이 되는가? 누구나 학교를 다닐 수 있지는 못했던 1970년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는다면 사회의 교양 수준이 높아지고, 그래서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에게 교육은 결핍된 것이었기 때문에 절실하였으며, 공부할 수 있는 것이 곧 행복이었다.

오늘날 교육의 기회는 편만해졌으며, 교육받은 사람들은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다. 교육에 노출된 시간은 엄청나게 늘어났으며, 그 연수도 길어졌다. 하지만 이제 교육을 절실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학교 교육 역시 배우는 기쁨 자체보다는 도구로 전락하였다. 더구나 80%가 넘는 고교 졸업자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대학 역시 보편교육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현상은 대학을 진학하지 못하는 20%에게는 낙인의 요소가 되었다. 즉 고학력화가 고졸자에게는 오히려 차별의 굴레가 되었으며, 빈곤의 위험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양적 확대가 곧 교육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 기실 교육이 발전했다고 보여줄 수 있는 지표는 많이 있다. 취학률, 진학률, 교사 1인당 학생 수, 학급당 학생 수, 국제성취도 검사 결과 등 많은 지표에서 우리는 ‘교육발전’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표는 진정으로 한국사회의 교육이 나아졌음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을까?

수많은 지표상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육현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오늘날 학교 교육에서 심각한 위기의 징후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높은 청소년 자살률, 낮은 학교 만족도, 학교 폭력의 증가, 수업 참여 거부의 증가 등이 그 주요 징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위험들은 행복한 삶, 인간다운 삶을 위해 교육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경쟁, 배타적 이기주의, 승자독식의 이데올로기를 양산하고 있는 이 시대의 교육은 작년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비롯하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기저에 원인으로 놓여 있다. 이제는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에게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세상, 지금과 같은 교육을 대물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보다 살만한 사회, 즉 누구나 존엄성을 인정받는 인간적인 사회를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성인들에게 있는 것이다.

예전보다 교육받은 사람도 많이 늘었고, 지식도 더 많이 가지게 되었지만, 세상은 더 각박해졌을 뿐만 아니라 각종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 우리는 더 행복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더 불안하고 위험을 느끼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과 위험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뉴스를 보면 ‘묻지마 폭력, 삼포세대, 오포세대, 칠포세대, 달관세대, 불안정, 불안, 위험, 쓸쓸한 노후, 각종 사건사고’ 등 모든 것이 위험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러한 위험은 노력한다고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붙어 공존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 위험의 발생가능성과 결과를 최소화해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울리히 벡(Beck)이 말한 것처럼, 이러한 위험 앞에 놓인 공동운명체로서 이 불안한 현실은 우리에게 공동체적 연대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한 대표적 사례가 최근 한국 사회에 슬픔과 충격을 안겨준 세월호 참사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한국 사회는 마음 속에 내재화된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찰로 인해 한국사회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장들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도 한국교육의 대혁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논의를 잘 진행하기 위해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질문에 대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첫째,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가? 둘째, 미래세대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교육의 혁신 과제는 무엇인가이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모든 사회성원의 존엄성이 인정되고, 자유와 개성을 발휘할 수 있으며, 평등과 공감의 공동체라면 누구도 반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첫째, 어떤 사람도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는 인본주의 사회, 둘째, 부모의 가난이 자식의 삶에 불리하게 대물림되지 않는 사회, 셋째, 모든 이의 개성이 발휘되고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받는 사회, 넷째, 누구나 열심히 일한다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적 소득을 보장받는 사회, 다섯째, 누구나 예술적 삶을 누릴 수 있으며,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 여섯째, 인간의 삶을 소외시키는 사회 문제를 협력적으로 해결하는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그것이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지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루며, 따뜻한 인성을 갖춘 사람일 것이다. 자신만의 복지와 안전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과 공존하기 위해 상생하며 다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적인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교실에서 어릴 때부터 성인 이전까지 주어지는 경험은 누적되어 개인적, 시민적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 이러한 전제 하에 우리는 교육에 임하고 있다. 그러므로 좋은 사회를 지향하는 첫 걸음은 교육에서 시작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학교와 교육이 변하면 사회가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이라는 과도한 믿음은 늘 경계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모든 면에서 엄청난 양적 확대를 이루어 낸 한국 교육이지만 오늘날 직면한 당대의 사회 위기 앞에서 기존의 교육은 회의와 반성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에 기존 교육 체제를 과감히 혁신하여 다음과 같이 학교가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교 교육의 변화는 무엇보다 수업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학생들은 일주일에 30시간 이상 교실에 앉아 있으며, 교사들은 20시간 내외로 교실에 서 있다. 이렇게 절대적인 분량의 시간을 일제식, 획일식 교육으로 채워서는 안 된다. 현재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는 상대적으로 교육이 정상화되어 있다. 그러나 고학년부터는 학습부진과 소외, 학습된 무기력이 점점 증가한다. 급기야 중학교 2학년 이후에는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엎드려 자거나 턱을 괴고 있는 등 수업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등학교에서는 매우 현저하다. 특히 고등학교는 성적과 계층 차이에 따라 학교 간 서열화가 강하기 때문에 취약 지역 학교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각하다. 이러한 수업거부 현상은 작금의 교육이 공교육의 이상을 달성하는 데 있어 중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수업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가?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들이 없는 중학교가 과연 있을까? 관찰한 바에 따르면 어느 정도 그 원리가 잘 지켜지고 있는 ‘혁신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참여를 거부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왜 그럴까? 바로 ‘협력’이 그 변화의 비밀이다. 1교시부터 6, 7교시까지 모든 수업을 같은 원리–협력과 소통-로 교사와 학생들이 협력해서 수업을 바꾸고, 이렇게 바뀐 수업은 역동적 교실을 만들어 나간다. 이러한 수업의 변화는 전국의 많은 혁신학교에서 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모든 학교가 혁신학교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혁신학교에서의 수업의 변화는 반드시 다른 학교들에 확산되어야 한다. 그리고 꼭 혁신학교가 아니더라도 ‘거꾸로 교수법’이나 그 밖의 다양한 수업원리를 참고하여, 한국의 모든 교실에서 무시와 학습된 무기력을 극복하여 단 한명도 소외되지 않는 수업을 운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교육의 책임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바로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인정과 민주주의를 지켜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성과를 이룩하였고 삶의 수준을 높였다. 이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결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승자독식의 사회질서를 구축하였고, 교실도 그 질서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사회에서는 돈과 권력이 인간을 지배하였고, 교실은 점수가 지배하였는데, 이 점수 역시 이후의 돈과 권력을 바꿀 수 있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변화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수업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며, 또 수업을 중심으로 변화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질문이 있는 교실, 협력하는 교실, 서로 도와주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는 수업, 인성과 시민성을 별도로 가르칠 필요가 없는 학교가 된다면 조금이나마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에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평생 연구해온 로버트 다알(Dahl)은 ‘민주주의는 결코 달성될 수 없는 유토피아이지만, 최선을 다해 그것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가 더 좋은 사회, 즉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인정되며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교실이 먼저 그러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교양 없는 경쟁의식으로 학교와 교실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우리는 불안과 위험의 시대를 제대로 버틸 수 없다. 우리가 지향하는 ‘인정과 복지’ 사회의 출발은 교실에서부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