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대면 알만한 환경계 인사들이 몇 명 포함된 작은 모임이 10여 년 전에 있었다. 이 모임의 주축 회원들은 비슷한 또래로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부터 고등학생들까지 가지고 있었다. 환경에 관한 여러 번의 대화와 행사를 하던 중에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환경학교를 만들자는 제안이 있었다. 학교에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20명도 체 되지 않는 초미니 학교로 ‘미래학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사장 한 명과 교장 한 명이 자천타천으로 임명되었다. 본디 계획은 학생 한 명당 한 명의 전문가나 교수를 교사로 하여 전문적인 환경교육을 시키는 것이었다. 자원봉사자 - 주관하는 사람들로부터 약간 강요는 있었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참여한 전문가들의 전공은 학생 수만큼 다양했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자신들이 배우고 싶은 분야를 찾아 지도교사를 선택하여, 학생과 담임교사 두 명이 하나의 조가 되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대체로 일중독자들이다. 미래학교에 설립에 동참하고, 교사도 하려는 전문가들은 오지랖까지 더 넓은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일말고도 환경과 관련된 일들에 참여하고 있어 보통의 전문가들보다 훨씬 일이 많았다. 그러나 매달 한 두 차례 만나 환경교육에 대해 논의하고 실행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계획임이 서서히 들어났고,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누구도 원하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미래학교는 순수한 환경교육보다는 자연여행 쪽으로 바뀌어갔다. 한 달에 한 번씩 1박2일 정도로 자연이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며, 그곳의 자연과 관련된 전문가를 한, 두 명 초청하여 배움을 청하는 형식이 되었다. 처음엔 여행지와 그곳의 자연 상태 등에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자료집을 만들기도 하였지만 이것도 차츰 구두로 소개하는 정도로 변하였다. 그럼에도 회비가 비싸지 않았고, 정기적으로 꾸준히 진행되는 자연에서 하는 학습여행이어서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름과 겨울방학 때는 각각 한 차례 정도는 3박4일 또는 4박5일 정도의 약간 긴 여행을 하였다.

미래학교가 운영되면서 세 가지 원칙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하나는 학생들 - 아이들과 어른들의 생활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이동을 하거나 여행지 현지에서 해설을 듣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른들은 학생들과 생활하지 않고, 학생들의 행동에 대하여 일체 참견하지 않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따라 간 부모들은 아이들의 개별적인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생명에 대한 배려와 존중심을 키우는 것이었다. 관찰은 서식지 내에서 하게하는데 이점은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솔선수범하여 보여주는 것이었다. 생명을 해치는 일은 교사에게 혼날 수 있는 유일하게 경우였다. 이 원칙은 치밀하게 준비된 교육학적인 차원의 원칙이 아니라 미래학교에 참여한 교사들과 학생들의 부모들의 철학이 반영된 일종의 불문 교칙 같은 것이었다. 서울대 삼림욕장을 갔던 경우를 예로 들어 보면서 미래학교를 조금 자세히 설명해 보자. 보통 과천에서 토요일 오후에 모여 버스로 목적지까지는 이동을 하였다. 목적지에서 식사는 학생들의 어머니들이 사전에 연락하여 준비해간 환경적으로 깨끗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하였다. 숙소에 있는 작은 회의실에 미팅을 짧게 가졌다. 교장은 먼저 새로 참여한 학생이나 가족 그리고 교사들에 대한 소개를 하고, 지난번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고 지난 여행의 즐거웠던 추억을 나누었다. 그리고 숲에 왔으므로 삼림생태학을 전공하는 교수의 숲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헤어지는데 아이들의 방은 어른들의 방과 완전 분리되었다. 초등학생보다 어린 유치원생 정도의 아이들도 학생들 방으로 보냈다. 학생들은 다음 날 아침까지는 학생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학생공동체라는 용어도 한참 나중에 정의된 것이었다. 학생 공동체는 남녀 학생들이 딴 방을 쓰지만 잠자기 전까진 함께 놀았다. 처음 첫 날만 서먹해 하였는데 이내 좋은 친구와 형과 언니 동생이 되어 어울렸다. 어른들은 일체의 참견과 감시가 하지 않았고 약간의 간식만 가져다 줄 뿐이었다. 학생들은 카드놀이도 하였고, 노느라고 밤을 새우기도 하였다. 일부 부모들은 이런 점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나타내었지만 학생들의 결정을 존중하자고 하여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2년 동안 한 번도 숙소 내에서는 다툼이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은 있었지만 공동체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어 어른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었다. 당연히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토론하고 재미있게 놀았고 밤을 새는 일도 적지 않았다. 학생들은 부모들도 즐겁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어른들이 있는 곳이 와보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다음 날은 삼림욕장을 산책하는 것이지만 잘 짜인 스케줄과 교육 일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되돌아 와야 할 시간과 산책시간 그리고 산책경로만 기억하고 있으면 되었다. 교사가 숲에 대한 설명을 하는 동안에도 일부 학생들은 물이 고인 웅덩이에서 도롱뇽 알을 관찰하기도 하고 두세 명이 조용히 숲 속 길을 걸어가며 무엇인가 대회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새로운 생물이나 현상을 보면 질문을 해오면 그때 다시 교사가 나서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교사가 모든 것을 다 잘 알고 있지도 않았으며, 학생들도 숲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으려는 기대도 없었다. 그냥 숲의 향기를 맡으면서 길에서 뛰기도 하고 장난치기도 하면서 놀았다. 그렇지만 누구도 가지를 꺾거나 생물체를 숲속에서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아직 초등학교 가지 않은 아이들도 형과 누나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을 희망하였고, 학생들도 동생들의 참여를 싫어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형이나 누나들 중 누군가는 어린 자신보다 어린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때론 얼굴도 씻겨주고 화장실에 데려다 주곤 하였지만 크게 귀찮아하지 않았다. 그 공동체 안에서는 모두가 당당한 독립 개체임을 스스로 인식하고 다른 아이들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일정이 끝나면 별다른 마무리 행사 없이 안전만 확인하고 집으로 되돌아올 때 어른들 보다 아이들끼리가 더 아쉬워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곤 하였다.

미래학교 2년 동안 24곳의 자연지역을 다녔고, 그 가운데 두 곳의 바닷가 여름캠프 (제주도와 울릉도)와 두 곳 산악지역 겨울캠프 (설악산과 한 곳의 스키장)가 포함되었다. 경비는 최소로 들도록 노력하였다. 섬에 갔을 때는 동네 마을회관이나 관공서 회의실 등에서 잤고, 겨울캠프 때에는 좁은 방에서 칼잠을 자면 다녔다. 이런 곳에서 잔 이유는 사서 고생을 하자는 취지는 결코 아니었고, 가능하면 가정사정이 어려워도 참석하게 하려는 경비절약 차원이 더 컸다. 먹는 것도 공동취사를 원칙을 하여 한 자리에 모여 다함께 음식들을 나누어 먹었다. 그럴 때면 좁은 자리에 앉아 자기 밥을 스스로 챙겨 먹어야 했는데 학생들은 큰 불평 없이 알아서 잘 하였다. 먹을 때도 대화가 끈이지 않았고 다툼은 없었다. 음식들은 가능하면 자연제품이나 유기농 식품을 판매하는 곳에서 다량 구입하여 사용하였다. 식재료 탓에 일반 식당 음식보다는 맛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음식은 늘 조금씩 부족하였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집보다 훨씬 힘든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미래학교 여행을 기다렸다.

질퍽거리는 갯벌을 걷기도하고, 간척호수에 도래한 철새 무리들을 관찰하기 위해 찬바람을 맞이하며 가름막 뒤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기도 하고, 단내가 날 정도의 힘든 경사 길을 걸어올라 산 정상에 오르기도 하고, 산사에서는 스님들의 말씀을 조용히 경청하기도 하고, 수경을 쓰고 하루 종일 물속을 관찰하기도 하고, 모기떼 가득한 한데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였다. 여행 중에는 교사 중 누구도 학생들에게 지시하거나 교육하지 않았지만 자연 속의 생명체들을 크게 방해를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음 것 생각하고 활동하게 내버려 두었다. 돌이켜보면 교장과 교사에게 특별한 아이디어가 없었었고, 한 달에 한 번은 여행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일정을 겨우겨우 소화한 경우도 많아서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만들 여유가 사실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미래학교가 다른 환경교육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2년이 거의 다 되어 갈 무렵인 가을, 미래학교는 영주로 여행을 갔었다. 영주 여행은 은어양식장을 방문하고 영주의 한 계곡 옆 숙소에서 자고, 둘째 날에는 부석사를 찾는 일정이었다. 그 여행이 다른 달의 여행과 달랐던 점은 새로운 학생들과 부모들이 참가하였고, 교육방송의 작가이자 VJ가 함께 한 것이었다. 교육방송에서 미래학교가 색다르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작가를 동행하게 하였다. 양식장에 도착하자마자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한 그룹은 양식장 바로 옆 하천으로 내려갔고, 다른 그룹은 기존의 학생들의 행위에는 관심이 크게 없었지만 그 옆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이들과는 다르게 한 남학생은 양식장 가두리에서 떼 지어 다니는 은어들에게 관심을 집중하였다. 그리고는 작은 막대기를 주어 은어들을 찔러대거나 휘둘러 때리려는 행동을 반복하였다. 그러자 처음 미래학교에 온 학생들 중에는 그 행동에 동참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지금까지 누구도 한 적이 없는 일부 학생들의 행동에 모두들 놀랐지만 참견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장과 학생의 어머니의 만류에도 그 학생은 기회가 되면 자신의 행동을 다시 반복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나타내었다. 한편 하천의 학생들은 몇 명이 따로 또는 함께 어울리며 수초 사이를 살며시 뒤지거나 돌멩이 살며시 들추어 올려보곤 밑에 있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놀고 있었다. 이런 두 학생 그룹의 차이점은 모두 다 목격하여 구분한 것은 아니지만 저녁 식사 후 작가와 교사 그리고 미래학교 학부모인 어른들의 토론회에서 밝혀진 내용들이었다. 특히 이 차이가 강조되었던 것은 저녁 직전 숙소 주변에서도 두 그룹의 행동들이 그대로 반복되었기 때문이었다. 막대기를 들었던 학생은 기존의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고, 계류에서 잡은 가재를 헤치기까지 한 반면에 다른 학생들은 같은 모습으로 관찰하였던 것이다.

자연을 접하는 판이하게 다른 두 행동에 대해서 방송국 작가는 이상하게 바라보았고, 이것을 교장과 교사들에게 “왜, 서로 다른 행동을 하는가?”라고 질문하였다. 교장은 미래학교의 기존 학생들과 처음 참여한 학생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자연에 대한 적응과 반응의 차이라고 답하였다. 그렇지만 기존의 학생들은 학교가 개설된 처음부터 생물체를 해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왜 그런 차이를 나타내었을까? 작가의 질문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미래학교 교사들은 또 다시 새로운 현상을 정리하게 되었다. 질문에 대한 정리는 다시 교장이 대표로 하였다. “적응 능력과 반응의 차이는 자연과 조우한 경험의 차이로 보입니다.” 교장은 당일 토론 중에 정리한 일면 즉흥적인 답이었지만 대답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작가도 동의하는 표정이었고, 그날 밤도 다른 여행의 밤처럼 주제에 대한 자유롭고 때론 거침없는 솔직한 대화가 지속되었었다. 한 방에 모여 있는 아이들은 낮과는 다르게 한 방에서 다 같이 웃으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어른들에게 다 들렸다.

영주 여행 이후 미래학교 교장을 비롯한 교사와 학부모들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자연 속에 내버려 두는 것, 다른 표현으로 자연과 함께 마음대로 하며 자유롭게 놀게 해주는 것이 이 시대 최고의 교육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연이 교사 역할도 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고 자연계의 이치도 깨닫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여러 교과서가 이런 점을 지적하였지만 눈과 머리로만 보고 이해하였지 마음으로 믿지 않았던 것이었다. 특히 자연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말 한 “자연 속에서 훌륭한 과학자와 예술가가 나온다.”다고 한 말이 새삼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그는 자연이 없는 도시 학생들에게는 자연사박물관이 자연을 대신할 수 있다며 자연사박물관의 존재의 중요성도 강조하였다. 훌륭한 자연사박물관은커녕 빠르게 변화하는 풍경이 점점 인위적이고 색깔만 푸른 조경작품들이 예전의 잡목 숲과 풀밭 그리고 도랑을 대체하였다. 새가 날아오지 않고, 계절이 바뀌어도 나비의 춤추며 나는 모습을 보기 힘든 인공자연을 아름답다고 강요받는 현실에서 그 도시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에게 자연 이치를 깨닫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미래학교는 어른들은 무지막지한 일정 안에서는 존재할 수 없었으므로 이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꾸준히 자랐고, 그 아이들이 삼 년이 지난다음 송지호 인근에서 다시 만나자 형제처럼 서로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며 미래학교의 엉뚱한 시도의 결과는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내었다. 미래학교 학생들이 감수성이 예민할 당시 자연과 함께 한 시간이 많았다는 것은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 다시 만난 그들은 어울려 농구를 즐기고, 낄낄대며, 그리고 석호 수로에서 물안경을 쓰고 배가 고플 때가지 두 시산 이상을 물고기를 구경하는 모습에서 이 년간의 미래학교가 낳은 교육성과가 보이는 것 같았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들은 밝고 당당하게 잘 자라주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악기 연주도 배우고, 마술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자란 모습을 고스란히 어른들에게 보여주었다. 학생들 가정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그저 평범하였지만 학생들은 대안학교도 가고 학교에서 학생회장도 하면서 어른들의 기대를 훨씬 벗어난 엉뚱한 모습으로 잘 성장하였다. 다들 특별한 과외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중고교 시절을 보냈다. 이젠 이들 학생들은 대부분 대학생이 되었고, 미래학교 시절 유치원 아이들도 중고등학생이 되었다. 각자 자기 개성을 잘 키워, 조소, 발레, 패션 디자인, 경영학이나 광고홍보 전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미래학교라는 이름을 가진 자연교실에서 학생들이 배운 생명에 대한 사랑과 다른 사람과의 소통 그리고 자연생태계가 제공하는 여러 가치에 대해서 잊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길 교사들과 부모들은 바라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시에 사는 여러 부모님에게 자제들이 자연 속에서 자유로운 경험을 할 수 기회를 더 많이 줄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