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무를 깎고 다듬어 쓸모를 만들어낸다. 목수가 하는 일이다. 버려진 나무를 주워 새로운 쓸모를 만들어 내는 일은 나쁘지 않다. 그 쓸모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나무에는 벌레들이 산다. 온갖 곤충의 유충들이 나무를 먹이로 삼는다. 벌레들은 목수의 눈치를 살피면서 살금살금 나무를 먹어치운다. 벌레가 생존을 위해 자기의 세계를 물어뜯고 있을 때 목수는 생존을 위해 세계의 일부를 헐어낸다. 공교롭게도 그 세계의 일부가 똑같이 나무라는 것일 뿐, 나무를 갉아대는 순간, 벌레와 목수는 동일한 존재가 된다. 그러니 목수일이란 벌레가 나무에게 하는 일과 한 치도 다를 것이 없다. 나무에 기생하는 벌레와 나무로 먹고 사는 목수 그리고 자연에 기대어 사는 인간들은 모두 자연의 세계를 헐어 자신의 이로움을 얻어낸다. 지구 위의 모든 생명들이 하는 일이다. 

지상에 수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지만 인간만큼 도구를 널리 사용하는 동물은 없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들은 물질의 세계를 조작하여 특별한 용도를 만들어냄으로써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냈다. 인간은 자연을 변형, 조작, 전치하는 과정을 통해 필요한 모든 물질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물리적 기능과 용도 뿐 아니라 정신적 사고와 감정 등등을 덧붙여 놓는 ‘이상한 동물’이다. 어쩌면 지상에 존재했던 생물 중에 가장 낯선(이전에는 한번도 없었다는 의미에서)존재가 인간일 것이다. 인간들은 그런 자신들은 대견해 한다. 

벌레와 목수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둘은 모두 강력한 이빨을 지니고 있다. 벌레에게는 이빨이고 목수에게는 연장이다. 목수의 연장은 나무를 자르고 깎고 파는 도구들이다. 톱, 망치, 끌, 대패, 도끼, 자귀, 드릴 등등 수십 가지의 연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벌레의 이빨이 하는 일을 벗어나지 않는다. 나무를 갉아대는 것. 벌레의 이빨이 나무와 벌레의 육체를 연결하는 도구라면 목수의 연장들은 나무와 인간을 연결해주는 문명의 이빨들이다. 목수의 연장들, 망치나 도끼, 톱과 끌 그리고 농부의 삽과 호미, 괭이를 보면 단 두 가지의 물질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날과 자루. 쇠와 나무이다. 나무를 물어뜯는 이빨들은 하나같이 쇠로 만들어졌다. 그 어느 것보다 단단한 물질인 쇠를 연장으로 쓰면서 인간은 다양한 물건을 만들어냈다. 인간이 벌레보다 우쭐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이다. 그 단순한 구조는 수만 년 동안 변하지 않았지만 인간은 그 연장으로 문명을 열었다. 물론 단순한 이빨 하나로 수십 만 년을 버텨온 벌레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말이다. 문명의 이빨은 인간 이외의 세계(때로는 인간 자신의 세계까지도)를 물어뜯어 인간의 세계로 편입하도록 만드는 장치이다. 그걸 인간들은 도구, 연장, 기계라고 부른다. 

인간의 이빨, 도구와 연장은 과학과 산업이 발달하면서 점차 복잡한 기계로 변화했다. 나무를 물어뜯는 벌레 수준의 연장들은 기계의 힘을 빌려 더 강력해지고 절대적인 힘을 구사하게 되었다. 문명은 더 복잡해지고 첨단의 과학은 세상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세계로 나누어버렸다. 이제 쇠 이빨을 가진 기계마저 마저 아날로그의 유물이 되었다. 한편에서 하이테크로 표상되는 디지털과 생명공학에 열광할 때 이를 뒷받침하는 아날로그의 유물들은 더 강력한 힘이 필요했고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인간은 자연은 더 많이 헐어내야 했다. 아마 기계문명이 시작되었을 때 인간은 그 결과가 지금 세상이 보여주는 끔찍한 결말로 치달을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을 소비할수록 늘어가는 환경과 생태의 파괴, 지구의 온난화와 이어지는 재앙들. 결국 문명의 연장들이 나무와 벌레를 지나서 인간을 향해 달려들게 된 것이다. 자연의 다른 존재들과 엇비슷한 삶의 조건을 가질 때는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문명이 고도화 할수록 더 많은 골치 아픈 문제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간은 깨닫고 있는 중이다.

2.

겨울이 오기 전에 작업실 땔감을 마련한다. 여름내 작업한 톱밥으로 그럭저럭 한 겨울을 날 수 있겠지만 지난해처럼 추위가 오래 지속된다면 그마저 모자랄 것이다. 지구가 따뜻해진다고 하더니 겨울은 외려 더 추워졌다. 북극의 수온이 올라가면서 찬 공기가 아래로 남하한 까닭이란다. 없이 사는 사람들에겐 여름보다 한 겨울이 고통이다. 온난화가 되거나 말거나 한반도가 아열대가 되어 잡히던 물고기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종들이 몰려오거나 말거나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 따뜻한 겨울이 될 거라는 어리석은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지구의 문제가 피부로 와 닿는 것은 일상의 삶 속에서 느끼는 변화의 조짐들이다. 여름 내내 오는 비에 뒷산 계곡의 물이 넘쳐 마당에 토사가 밀려들고 나무들은 습기를 먹어 곰팡이들이 끝도 없이 피어오르고, 잦은 폭설에 봄이 다가도록 한파가 사라지지 않는 두 해를 지나고 나서야 따뜻해진 지구 덕에 추운 겨울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접게 되었다. 

얼마 전 귄 다이어라는 사람의 책이 번역되었다. 20년 안에 전 세계가 힘을 합해 온실 가스배출을 80% 줄였을 때를 가정한 이후의 시나리오다. 지구의 온도는 가까스로 2-3도쯤 올라 평형상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결과는 끔찍하다.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인한 기온의 상승, 조류의 변동과 홍수와 폭염, 한파를 몰고 오는 대기 순환의 변형, 북극의 해빙과 함께 오는 해수면의 상승, 만년설이 사라지면서 태양열의 흡수는 더욱 빨라지고 기온은 더욱 오르고.... 기후의 변화는 곧바로 지형의 변화로 이어진다. 저온의 건조한 공기로 인해 곡창지대는 거대한 사막으로 변하고 이로 인한 극심한 식량생산의 저하가 뒤를 잇는다. 대량의 인구이동과 식량약탈 전쟁이 이어지고 세계는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단지 기온이 2-3도 올라갈 뿐인데 정말 그렇게 엄청난 위기가 닥쳐 올 것인가? 그렇다고 한다.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이미 차고 넘친다. 그것은 단지 몇도 정도의 체온 상승으로 생명이 위험 수위에 도달하는 인체와 흡사하다. 미래를 예측하는 학자들의 시나리오는 파노라마로 이어지는 재앙들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일상의 상투성에 매몰된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을 실천하기란 매우 어렵다. 꽃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 한 치의 땅을 늘리기 위해 짓밟히는 풀들에 언제든지 눈을 감는다. 석유문명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자동차를 버리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문명의 현란한 속도에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자연을 보기 위해 냉큼 고속도로 위에 올라탄다. 인간의 문명 안에서 사는 한 거기서 벗어나는 일이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다. 먼저 말하자. 그렇다고 있는 걸 내다버리고 문명을 되돌려 야만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단 한 순간에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지만 세상에 그런 방법은 없다. 더욱이 지속의 상투성에 매몰된 일상적인 삶 속에서 전면적인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의 삶을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소수자의 현명한 선택은 자연의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연을 천천히 낭비하는 것. 자연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소비하는 현대의 삶을 되돌리지 않고는 사람 사는 모순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마저 이미 늦었다고 학자들은 한 목소리로 경고한다. 자연과의 조화를 방해한 주범으로 꼽히는 게 과학이나 물질의 발전인 듯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과학적인 방법 말고 인간이 자연과 조화할 수 있는 길은 쉽게 찾아질 것 같지도 않다. 이를테면 화석연료를 대치하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내거나 지구의 온도를 낮추기 위한 방안들은 과학의 힘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는 몽상에 불과하다. 이제 과학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문명이 그렇듯이 모순적이다. 인간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발전시킨 과학기술이 가져온 엄청난 에너지의 소비가 지구를 위기에 빠뜨렸지만 이제 그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안 역시 과학과 기술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마 이 서로 다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인간의 모든 문명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을 동원해 지구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 과학문명과 지식의 체계가 가져온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아내고 자연과 평형을 이루는 삶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그리고 지속적인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적어도 그 두 가지는 서로 모순 없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3.

자연과의 평형은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삶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이제까지의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말은 언제나 그럴 듯하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자연과의 교감이나 조화로운 삶을 위해 자연적인 삶을 선택하거나 좀 더 원시적인 생활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사는 방법은 단순히 자연과 가까이 하기 위해 시골로 이사한다든가 채식주의자로 남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자연의 삶이 훌륭한 선택으로 추앙될 수 있지만 언제나 개인적인 선택의 결과인 소수자의 삶으로 남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평형은 먼저 자연이 지니고 있는 지식에 대한 인간의 오해를 풀면서 시작되어야 한다. 인간의 문화에 익숙한 인간은 자연의 질서조차 인간의 제시한 서열에 충실한 메커니즘으로 이해한다. 인간의 지식이 구획해놓은 수많은 분야와 영역들은 무시할 수 없는 서열화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나 포유류를 파충류나 갑각류보다 우월한 종으로 인식하는 것 역시 그렇다. 인간과 생물 혹은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지식의 일방적 서열화는 인간과 자연의 지식 혹은 자연에서 얻어진 경험의 세계를 끊임없이 왜곡해 왔다. 인간의 이론화된 지식의 체계는 자연에서 얻은 경험적 지식을 언어화한 것이다. 그리고 경험적 지식은 자연이 지니고 있는 지식에서 얻어진 것인데도 말이다.

자연의 지식이란 자연 스스로가 평형을 이루는 지적 체계를 내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개미들의 삶의 방식을 생태와 본능으로 이해할 뿐 인간과 다른 개미의 지식체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모든 자연의 현상에 대해 사람들은 스스로 만든 특권, 차이화, 서열화 등에 기초한 지적인 체계를 만들어내고 그를 바탕으로 분리, 배척 그리고 멸시와 배타와 경멸을 수반한 폭력화된 체제에 익숙해왔다. 이는 동물에 대해, 벌레에 대해, 식물에 대해 그리고 모든 자연에 우리가 은연중 대해 왔던 태도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것이 자연에 대한 폭력의 악순환으로 작용해 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이 생물의 종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조차 궁극적으로 인간의 이익에 기여하기 위한 도덕률로 포장된다. 하지만 인간을 향한 이익의 관점에 서는 한 지식의 서열화는 해체되지 않는다. 여전히 인간 중심적인 지식체계는 인간이란 종의 지속성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재고되어야 한다.

지구의 위기라는 관점은 어쩌면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을 제외한 생명들도 지각의 변동과 자연의 변화 그리고 우주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왔지만 그러면서 스스로 평형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지속해왔다. 기후의 변동과 이로 인한 끊임없는 재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남아 지구 위에 생존을 이어가는 종은 인간이 아닐 수 있다. 지구 위에 인간이 없었다면 지구는 훨씬 더 안정정인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고도의 문명을 발달시킨 결과 그 어느 자연의 종보다 취약한 시스템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아직까지 자연과 생명과 우주의 진실에 근접한 지식을 가진 유일한 존재이다. 인간을 스스로 위대한 생명체라고 말하는 것은 단지 인간 스스로의 자만에 빠진 우쭐거림만은 아닐 것이다. 자연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은 그 인식의 변화를 통해서 새로운 삶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과학과 문명을 낳은 지식을 통해 지구가 처해 있는 위기를 해결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결과를 가져온 지식의 체계에 대한 점검이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