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칼럼

남기철(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속가능한 삶과 사회 : 더불어 사는 복지의 구현

남기철(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빈곤과 양극화

요즈음 우리나라의 위기를 많이 이야기한다. 위기의 요소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과연 위기인가 혹은 과장된 표현이 아닐까하는 근본적 문제제기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심화되는 빈곤과 양극화의 문제는 짚어 보아야 한다. 분명, 살기가 많이 힘들어졌다. 금액으로 표현된 소득이 늘어났을지언정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빈곤층이 무척 많이 늘어나고 있고 그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지속가능한 삶이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더불어 사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살아가는 방식을 되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일년 전인 2011년 1월 말, 재능 있는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진 C씨(32세, 여)가 사망한 사례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C씨가 숨진 것은 이웃 주민에 의해 뒤늦게 발견됐다. C씨가 "며칠 째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다. 남는 밥과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달라"는 쪽지를 남긴 것을 보고 집을 찾아간 이웃 주민이 이미 숨져 있는 그녀를 발견하였다고 했다. C씨는 영화학을 전공하였고 주목받는 단편영화의 시나리오를 써서 여러 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사회에 점점 큰 힘을 뻗쳐오고 있는 가난의 덫을 피하지 못했다. 사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C씨는 능력과 재능이 있는 작가라고 주변에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C씨는 유별난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았다. 남들에게는 통 일어나지 않는 극도로 불운한 일을 혼자서만 연달아 경험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OECD에 가입한 경제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대한민국에서 21세기 들어 ‘먹을 것을 좀 달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극단적 상황에 처해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해야 했다.
올해 들어서도 이런 안타까운 사연은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이번 설 명절 기간에도 80대의 한 할머니가 혼자서 돌아가신 안타까운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우리는 매체를 통해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하는 사례마저도 심심치 않게 접하고 있다. 2011년 1월 4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서 기초생활수급자인 60대 노부부가 생활고를 비관한 끝에 동반자살을 선택하였다. 발견된 유서에는 “수급비 가지고는 생활이 안 돼 죽음을 선택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남편의 퇴직후 택시운전으로 근근히 살아오다 그마저 일이 끊기고, 관절염과 우울증을 앓고 있던 아내의 병원비는 노부부를 압박했다. 채무 승계를 막기 위해 법적 이혼까지 선택한 부부에게 기초생활 수급비 40만원은 최소한의 생존도 보장하지 못했다. 부부는 40만원의 수급비 중에서 지하방 월세 30만원을 제외한 10만원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해오다 우울증과 생활고를 끝내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상대빈곤율은 지난 2000년(10.5%)에서 2009년(18.1%) 사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통계청이 2010년에 발표한 '2009년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빈곤층은 305만 8000가구이다. 빈곤가구가 상대적으로 가구원 수가 작지만, 인구수로 따져보아도 우리나라의 빈곤인구는 약 7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특히 아동과 노인이 포함된 가구의 빈곤율은 전체 가구 빈곤율보다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아동 가구는 전체 가구의 약 1/4 이상, 그리고 노인 가구는 전체의 절반 이상이 빈곤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주요 국가 중 단연 1위를 나타내고 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서 무가지를 모으는 노인이나, 손수레를 끌고 폐지나 재활용품을 줍는 노인을 흔히 볼 수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 노인빈곤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나타내어 주는 모습이다.
빈곤과 양극화의 심화는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 경쟁만으로는 곤란하다

경쟁은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그런데 이것만 강조하다 보면 더 근본적인 것을 놓치게 되기도 한다. 왜 성장을 해야 하는가? 사람들의 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성장의 과실이 ‘지나치게’ 일부계층에게만 돌아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이 필요한 이유를 체감할 수 없게 된다.
경쟁은 필요하고 공정한 경쟁은 강조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칫 우리나라의 최근 빈곤과 양극화 문제를 경쟁에서 뒤처진 혹은 게으름의 문제로만 보아 ‘개인의 잘못’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 도덕적 해이의 사례가 없지는 않겠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근로의욕이 높은 나라이다. 빈곤층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잘 살아보려고 애를 써왔다. 아마 대개는 앞으로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빈곤에서 벗어나는 장밋빛 희망이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다. 어쩌다 한두 명의 탈빈곤 사례는 있겠지만 이는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이다. 개인의 노력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요인이 빈곤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만명의 대졸자 중 단 수천명만이 원하는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열심히 노력해서 1%의 가능성을 성취하라는 것은 경쟁의 장려라기보다는 사회적 폭력이다. 일단 참여자 절대다수가 패배하게 되어있는 ‘게임의 규칙’을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펴본 빈곤사례들의 장밋빛 전망을 가로막는 암울한 구조적 현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경쟁 이상의 사회적 통합을 위한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사회복지, 자원봉사와 같이 ‘더불어 살려는 노력’이 개인적으로 또 사회전체적으로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더불어 살기’는 너무 부족하다. 연구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빈곤층에게 제공되는 지원의 수준은 우리나라가 외국보다 현저히 낮다고 분석되고 있다. 노인부부의 경우 우리나라의 공공부조 급여수준(물가와 구매력을 반영하여 PPP 지수로 환산한)은 미국의 54.7%, 영국의 50.7% 수준에 불과하고, 중증장애인 부부의 경우 한국은 미국의 57.2%, 영국의 26.2%에 불과하다. 개인적인 기부나 자원봉사도 아직은 모자라다. 우리나라의 성인 자원봉사활동 참여율은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표 > 시장소득 빈곤율과 가처분소득 빈곤율

 구분

 핀란드
(2004)

프랑스
(2000) 

독일
(2000) 

스웨덴
(2005) 

영국
(2004) 

미국
(2004) 

멕시코
(2004) 

한국
(2009) 

 시장소득
중위소득 50% 기준 빈곤율

27.3

27.8

28.5

27.7

26.9

24.5

21.1

18.6

가처분소득
중위소득 50% 기준 빈곤율 

6.5

7.3

8.4

5.6

11.6

17.3

18.4

16.8

자료 : 김문길․김태완․전지현(2010), 빈곤통계연보
 
앞의 표에선 ‘시장소득’의 빈곤율과 ‘가처분소득’의 빈곤율을 비교하고 있다. ‘시장소득’은 국민 개개인이 벌어들인 금액이다. ‘가처분소득’은 국가에 세금이나 사회보험료 등을 내고, 또 한편으로는 국가에 의한 사회보장 혜택 등을 받은 다음의 금액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고 쓰는 돈은 결국 가처분소득이다.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의 차이가 클수록 세금을 걷어서 복지에 활용하는 국가의 역할이 많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표를 살펴보면 시장소득의 빈곤율은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주요 국가가 20% 이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우리나라보다 빈곤율이 10% 이상 더 높다. 국가가 재분배 역할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나라가 빈부격차와 빈곤층이 오히려 적은 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국민들이 생활하는 것은 세금과 법에 정한 사회보험료 등을 내고 국가에 의한 급여혜택도 받고 난 가처분소득을 가지고서이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의 빈곤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즉, 국가가 재분배 역할을 하고 난 다음에는 유럽의 국가들은 거의 20% 정도 빈곤율이 줄어드는데 비해서, 우리나라는 가처분소득의 빈곤율이 시장소득의 빈곤율에 비해 채 2%도 낮아지지 않는 것이다. 국가가 별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빈곤문제에 대응하고 사회복지정책을 열심히 펴는 경우에는 시장소득의 빈곤율과 가처분소득의 빈곤율 차이가 커진다. 이 수치를 통해 우리나라가 빈곤문제에 대해 얼마나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나라나 유럽의 복지국가들이나 시장경제활동을 통해 나타나는 빈부격차와 빈곤문제는 마찬가지이다. 아니 오히려 우리보다 유럽의 경우가 격차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국가가 빈곤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통해서 유럽은 격차를 줄이고 빈곤 탈출구를 최대한 확보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빈곤 탈출구를 만들기 위한 국가의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국제 비교를 통해서 드러난 이 수치를 통해 우리나라가 빈곤문제에 대해 훨씬 더 많은 활동을 펴야 한다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빈곤문제의 탈출구는 빈곤에 빠지는 사람들 개인의 노력을 극대화하는 것에 있지 않다. 너무 많은 중산층을 빈곤에 빠뜨리고, 한번 빈곤에 빠지면 대부분은 다시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드는 우리나라의 빈곤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흔히 한국의 부자는 존경받지 못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물론 개인의 노력과 창의적인 기업정신을 통해서 기업활동을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사회에 기여하는 부자는 존경을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 한다. 창의적인 경쟁이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시민들은 부유함과 빈곤함이 공정한 경쟁에 기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쟁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잘 수용되지 않는 것에는 빈곤과 양극화가 지나치게 심해지는 가혹한 게임의 규칙이 원인이 되곤 한다. 빈곤과 양극화의 탈출구는 개인의 노력과 경쟁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빈곤을 양산하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에서 찾아져야 한다.

▢ 가난을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

“가난은 나랏님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어떤 나라도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경우는 없다. 그러다보니 가난하다는 것은 빈민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는 수없이 많은 빈민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여건을 가지고 있다.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기울인다면 가난이 없어지지는 않아도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빈곤에 빠졌던 사람들도 다시 빈곤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가난은 나랏님도 어쩔 수 없다”. 이 말은 예전에 속담처럼 종종 사용되던 문구이지만 이제는 다르다. 현대 국가에서는 이 말이 무조건 진리가 될 수는 없다. 가난은 어디에나 있기는 하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질은 나라마다 큰 차이가 있다.
어떤 나라의 수준은 부자의 삶을 통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를 통해서 판단될 수 있다. 빈부격차가 심하고 저개발인 국가에서도 부유층은 극도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기도 한다. 개발이 되고 수준이 높은 나라의 부유층보다 덜 화려하지는 않다. 그런데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의 빈곤층의 생활형태는 큰 차이가 있다. 소위 저개발국가의 빈민은 굶고,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인 참여가 되지 않고, 의료와 주거 등을 보장받지 못하고, 빈곤이 세대로 전승되며 빠져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선진국의 경우 빈민은 상대적으로는 가난하더라도 최소한의 생계와 의료, 주거, 교육 그리고 사회적인 참여활동이 보장되며 이러한 토대 위에 본인의 노력으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얼마 전부터 ‘국격’이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건너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국격은 궁극적으로 복지와 삶의 질에서 나온다. 이제는 “가난은 나랏님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말은 “가난을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이 보인다”는 말이다. 가난을 통해서 드러나는 우리나라의 수준은 불행히도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명심할 것은 빈곤문제에 대한 적절한 관심이다. 창의적인 경쟁 못지 않게 더불어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생의 가치가 강조되어야 한다. 나의 일이 아니라는 선입견, 불쌍히 여기는 궁휼적 자선심, 빈민 개인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도덕적 비난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더불어 사는 활동이 보편적인 문화가 되도록 자원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해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취약한 복지정책을 보강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빈곤 구조와 이 때문에 발생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정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나와 내 가족을 빈곤으로부터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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