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칼럼

유정길(에코붓타 前공동대표)

제로성장사회에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

유정길(에코붓타 前공동대표)
무전여행을 하다보면....

약 10년전 본인이 관계하는 한 대학생회에 선재수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화엄경의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 다녔던 구도행 처럼, 전국의 각지의 스승을 찾아가 이야기를 말씀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 중에 하나는 2-3일 동안 돈을 일절 갖지 않고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무전여행이 있었다.

돈을 풍족하게 갖고 다니면 여행에 어려울 일이 없다. 버스나 기차, 택시 등, 충분한 돈을 지불하고 타면되고. 식사도 좋은 식당에서 사먹으면 되며, 좋은 호텔이나 모텔 등에서 숙박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돈만내면 사람과 부딪칠 일도, 시간을 소비할 일도 없다. 그러나 돈이 없이 무전여행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걸어다니는 것이 기본이 될 것이다. 차를 타면 주변의 풍경은 자동차라는 기계의 속도로 내 옆을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걷게 되면 나무, 풀, 사람, 모두 걷는 속도에 맞게 관계를 맺게 된다. 자세히 살필 수 있게 되고, 만질 수 있으며, 말을 건넬 수도 있고,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조아려 길섶에 핀 꽃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밥을 먹거나 잠을 자야 할 경우, 근처 민가나 식당에 가서 ‘신세를 끼치는 죄송한 마음’으로 당연히 ‘겸손히’ 밥 한끼를 청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그에 부응하는 일을 해줘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밥을 얻어먹고 잠까지 자면 당연히 이렇게 좋은 마음을 내준 사람과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은 수 없을 것이다. 대화하고 소통하고, 이해하고, 공감해주면서 서로 감사하며 남다른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부득이 차를 타야할 경우 히치하이크(Hichihike)를 해야 한다.
 
쉽지 않지만 히치하이크를 할 때도 운전자에게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이 되도록 겸손해야 하고 당연히 도움을 준 사람과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된다. 결국 돈을 갖지 않고 여행을 한다면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관계 맺어야 한다. 동네아줌마, 식당, 운전기사 등등 많은 사람의 은혜를 입으면서 내가 이들에 의존해서 살고 있는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된다. 상대방에게 겸손할 수 밖에 없고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상대를 통해 나를 비추어보는 감각이 예민하게 발달된다.

돈이 있으면 이웃이 필요 없다.

그러나 돈이 많이 있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다. 겸손해야 할 필요도 없다. 돈이 중심인 사회에서는 서로 침범하지 않는 사적인 영역이 많아지고 개인의 담장은 높아진다. 돈만 있으면 자기만의 토굴속에 생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생태위기는 돈에 의존하는 사회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다. 돈에 의존하는 사회는 결국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을 파괴하며 자기 스스로를 파괴시킨다. 생태적 지속가능한 사회는 그러한 돈 중심 사고의 패절을 의미한다.

돈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사람에 의존하는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만남, 그들간의 협력과 의존성이 높은 사회로 가야만 한다. 그래야 돈이 적어도 충분한 삶의 질을 누리는 사회가 될 수 있다. 또한 돈을 많이 벌지 않고도, 많이 소비하지 않아도 돈을 많이 벌 때와 손색 없는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고,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안전사회를 만들수 있다. 그러한 상호보살핌의 끈끈한 공동체가 바로 생산과 소비, 직업과 문화, 복지와 건강을 유지하는 사회안전망이 된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정글세계에서 상보의존과 협력이 중심인 사회로

허버트 스펜서 (H, Spencer)는, 다윈(C. Darwin)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사회적으로 재해석하여 '사회진화론(Social Evolution)을 주창했다. 다윈이 주장했듯이 사회도 ‘생존경쟁, 적자생존, 약육강식’이 기반이 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실제 이후 자본주의 산업사회는 경쟁, 생존, 승리가 기반이 된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정말 사회는 경쟁과 약육강식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회일까?

이러한 사회진화론을 생물학자인 크로포트킨(P, Kropotkin)은 그의 명저 ‘상호부조론(Mutual Aid)’에서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개체와 개체사이에서 부분적으로 경쟁은 있지만, 생태계 전체는 상호보완, 협력, 상호의존성이 더욱 규정적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진화의 과정에서 협력적 관계에 있는 종들이 훨씬 더 오래 살아남아 다음 진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약하지만 서로 의존성을 높이고 협력을 잘하는 개체가 결국 강하지만 협력적이지 않은 개체보다 훨씬 더 종족을 오래 보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경쟁을 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회진화론적 시각이라고 한다면, 크로포트킨 시각은 협동을 하는 개체들이야 말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경쟁이 보편이라고 생각하여 오랫동안 ‘이기는 논리’, ‘경쟁의 논리’와 ‘승리하는 방법’을 배워왔다. 지금 지속불(不)가능한 사회의 논리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엄청난 비용의 사교육을 통해서 대학을 다녀야 하는 이유, 좋은 스팩과 학벌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경쟁에 보다 유리한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더 많이, 더 크게 소비하고 누리는 사회를 지향하고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같은 아메리칸 라이프 스타일(American Lifestyle)을 지향하는 것이다.

크로포트킨은 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로 인식하는 것도 바로 잘못된 인식이라고 강조한다. 전쟁은 기록하기 좋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지만, 실제 전쟁은 100년에 한 두번 있을까 말까하는 정도였으며, 대부분 더 오랫동안 평화로웠던 기간이 지속되었고, 그 기간동안 사람들은 생산하고 놀고 즐기면서 농업을 기반으로, 상업과 무역을 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고 돕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오늘날 ‘지속가능한 발전 (Environmantally Sound and 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말은 큰 유행 (Fashion)처럼 되었다. 그러나 본래의 ‘전복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반대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싶다’는 말로 오독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속가능한 사회’는 과거의 페러다임과는 명확한 단절을 강제하고 있는 개념이다. 개인과 개체를 중심으로 경쟁, 이익, 이윤의 논리가 아니라. 유기체적 전일적 관점에서 서로 협력, 의존적 사회로의 전환을 강제하는 메시지이며, 목표지향적인 사회가 아니라 과정지향적이고 관계지향적인 사회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메시지이다.

돈에 의존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끼리의 협력에 의존한 사회

오늘날 지속불가능한 사회를 이끄는 가장 큰 패착은 ‘자연은 무한하다’는 잘못된 기반에서 출발한다. 무한한 자연은 아무리 써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그 무한한 자원을 소비하면서 시간적 차이는 있지만 언젠가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경제적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하는데 위기의 원인이 있다. 그러나 잘사는 20% 사람들의 자원소비로 인해 지구온난화 등의 치명적 위기가 초래된 것이다. 만일 더 많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도 그들과 같은 생활양식으로 살게된다면 파국은 더욱 앞당겨지게 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는 ‘자연은 유한하다’는 전제로 모든 경제학, 정치, 민주주의, 삶의 행복과 정의에 대한 평가 등을 새롭게 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연이 무한다고 생각하며 끝없이 직선적인 ‘성장, 진보, 발전’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실제 이제 플러스성장을 구가하던 찬란한 시절은 얼마 남지 않았다. 위기로 닦친 오늘날, 이제 제로성장, 마이너스성장을 대비하는 삶을 준비해야한다.

우선 지속가능한 사회는 돈중심의 사회에서 사람과의 관계중심 사회로 가야한다. 가난한 사람이 생존하는 방법은 결국 ‘가난한 사람끼리 서로 의지’하는 것밖에 없다. 저성장사회, 마이너스 성장사회에서는 사람과 사람끼리의 상호협력과 상호부조의 다양한 관계망을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협력적관계의 활동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한살림이나 두레생협등, 생활협동조합운동은 이제 광범위하게 확대되었다. 협동조합운동은 바로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협력하고 협동하는 생산, 소비, 거래관계이다. 또한 생협운동을 중심으로 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운동 개념의 로컬푸드(Local Food)운동이 널리 확대되고 특히 학교 급식에 적용하려고 하고 있다. 이들 모두 기업이나 자본에 맡기지 않고 풀뿌리 지역단위로 가까운 사람들끼리 경제적으로 상호협력하는 활동이다.

또한 지역통화운동(Local Currency, Local Money)도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의 ‘두레, 계’처럼 마을과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돈이 없이도 서비스와 재화를 서로 교환하면서 상호부조하는 보완화폐운동이다. 이 통화에서 화폐는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대면하여 돕고, 관계 맺게하는 매개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대단히 중요하고 의미있는 활동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는 오늘날 같은 중앙정치 중심사회보다는 분권화된 풀뿌리 사회를 지향한다. 생산, 소비, 폐기등의 삶의 관계망을 지역차원에서 보다 넓고 긴밀히 갖는 것을 의미한다. 원전을 폐기하고 대안에너지사회로 가려 할 때 태양열, 태양전지, 풍력, 파력, 조력등 자연 에너지원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러한 에너지시스템은 결국 지방분권적 시스템내에서 더욱 잘 작동된다.

또한 중앙중심의 다국적 대기업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이 많아지는 것을 권장한다. 그래서 지역내에서 고용과 생산행위가 다양하게 벌어지고, 지역공동체가 사회안전망으로서 역할을 하는 공동체복지로 가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기업들이 협동조합방식으로 발전되면서 지역을 중심으로 협업, 협동적 사회를 만들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전통문화는 모두 지역에 기반을 두고 사는 사람들끼리의 생산의 문화였다. 그래서 전통문화를 박제화시키지 않고 살아있는 문화가 되려면 결국 지역이 공동체적 삶이 회복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성장의 사회가 아니라 성숙의 사회로

지역에서 누천년간 살아온 붙박이들이라면 자기가 사는 지역이 파괴되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붙박이문화는 사라지고 모두 떠돌이문화가 일상화 된 오늘날, 한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사는 사람이 드물다. 당연히 이웃을 알 필요도, 지역의 자연에 책임을 져야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지속가능한 삶은 결국 지역을 회복하는 것이며, 지역의 협동적 삶을 회복하는 것이고, 나아가 지역의 정주의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지역 사람들끼리 서로 살가운 협력적 관계를 높여나가는 것이며 이것은 단순히 지속가능한 사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끼리의 진정한 공동체적 삶을 복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안된다. ‘지속가능한 사회’는 ‘지속가능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유지될 수 있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높이’를 지향하고 계층상승을 지향하면서 경쟁과 대립에 단련된 사람은 만들어 낼 수 없는 사회이다. ‘믿습니다 주시옵소서’의 종교로 돈과 출세를 위해 부처님이나 예수님을 중간 거간꾼 역할로 생각하며, ‘돈’이라는 우상을 더 높이 떠받들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만들수 없다.

이제 ‘성장’이 아니라 ‘성숙’의 사회로 그 페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소박하게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풍요롭게‘의 삶을 찾아 나가야 한다. 생태적 지속가능한 사회는, 경쟁에 이기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하지 않는것, 다른 사람보다 먼저 경쟁을 포기하고, 진정한 삶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을 한 사람들, 그러한 삶이 진정 행복이라고 철석같이 맏고 즐겁고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의 열정과 그 엔진의 힘으로 만들어 질 수 밖에 없다. 인내하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 삶을 부러워하는 행복의 힘이 변화의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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