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집 아이들이 밤을 새는 건 일상이다. 밤엔 쌩쌩하게 돌아다니고 새벽녘이 다 되어야 잠들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낮 동안 내내 자다가 오후 서너 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일어난다.
아이들과 함께 한 집에 살아온 지난 19년을 돌이켜보면서 가장 힘든 일을 꼽으라면 단연 밤낮이 뒤바뀐 아이들과 공존하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뒤바뀐 생활리듬을 고쳐주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다가 이런저런 사건도 많았다. 이래저래 일찍 자려야 잘 수 없는 나날 속에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새벽형 체질인 내 자신의 생체리듬이 뒤엉켜 컨디션이 엉망이 되곤 하면서 멘붕(?)이 일상화된 상태, 지난 19년 동안 내 생활의 저변이다.
무엇보다 그 밤 동안 아이들의 행적을 알기 어려울 때 나는 불안과 무력감에 시달린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지만 아이들의 가슴 속을 헤아릴 수 없음이 참으로 괴롭다.
에피소드인데 상징하는 바가 있어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 남자 아이들과 함께 살 때였다. 아침에 학교에 갈 시간이 되어 일어나라고 깨우는데, “아이 XX” 이러면서 주먹으로 벽을 치고 이불을 뒤집어쓰던 아이를 보며 화가 치밀어 어찌할 바를 몰랐던 적이 있다. 나중에 다른 아이를 통해 “그 형이 꿈속에서 막 햄버거를 먹으려고 하는데 목사님이 깨웠대요.”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아이는 나중에 미안하다고 나에게 사과를 했고 나도 씩 웃으며 햄버거를 못 먹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아침은 그렇게 나에게 부담스럽고 고단한 시간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런데 요즈음 나는 밤을 샌 아이들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워 아이들 얼굴 가까이 엄지손가락을 세워대곤 한다. “최고야!” 얼굴근육에 힘을 주면서...
요즈음 아이들이 ‘가족’을 주제로 단편영화를 만들고 있다. 2월 25일 ‘들꽃스마트폰 영상페스티벌’에 출품할 작품이다. 거리에 있는 아이들부터 쉼터, 그룹홈(group home) 그리고 지역아동센터와 방과후 아카데미에 있는 아이들 등 17개 팀이 참가신청을 하였고, 열심히 영상물들을 창작하고 있다. 영상물 형식은 단편영화, 다큐, 뮤직비디오 등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 우리 집 아이들도 그 하나의 팀으로서 단편영화를 만들고 있다.
아이들의 몰입이 놀랍다. 몰입했기에 밤을 새운다. 줄거리를 짜고, 제목을 붙이고, 촬영을 하고, 편집까지 하는 전(全) 과정이 그야말로 몰입이다. ‘대못’은 그 영화의 제목이다. ‘엄마의 향기’, ‘알아주세요’ 등의 제목들 중에서 최종 ‘대못’으로 정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폭력과 상처들을 상징하는 제목이다.

영화 속 주인공 해정이와 연주는 친구 사이다. 해정이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는 알콜중독에 이유 없이 해정에게 소리까지 지르곤 한다. 해정이는 가출한다. 가출한 해정이가 친구 연주네 집으로 찾아가지만 연주네 부모는 그를 경계한다. 연주가 해정이를 따라 가출할 것을 걱정한다. 사실 연주는 평범한 가정에서 과보호를 받는 것 같지만 방임되고 있는 아이다.
둘 사이의 우정은 이런 아픔을 매개로 이어진다. 연주네 가족에 의해 해정이는 친구를 만나지 못한 채 자살시도를 한다. 해정이가 상처를 받을 때마다 심장을 상징하는 빨간 하트에 대못이 하나 둘 박혀간다. 그러다 엄마의 음성을 듣고 결심을 돌이킨다. 그리고 대안가정인 그룹홈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새롭게 가족의 정을 느끼면서 대못이 하나 둘 빠져간다.

“못 자국 난 구멍은 분명 상처이다. 하지만 구멍은 대못이 빠졌다는 증거이다.” 영화는 이런 중얼거림으로 끝난다.

영상물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겪어온 생생한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로 만드는 것에 아이들은 흥분하면서 밤을 새우곤 하였다. 발갛게 상기한 아이들의 얼굴을 볼 때가 많았다. 참 예뻤다. ‘아~ 예쁜 것이 이런 것이구나,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그러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한편 가라앉았던 가슴 속 상처를 휘젓는 것이기도 해 한 아이는 너무 힘들어 방황하기도 했다.

“속에 불덩이가 있어요. 불덩이가 타올라 가슴이 데이는 것 같아요.”
“TV에서 보니까 엄마 역할을 누가 맡아주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 것을 보았는데, 한 번 그렇게 하고 싶어요.”
“엄마에 대한 감정이 한 편에선 너무 밉고 또 한 편에선 너무 미안하고 그러다보니 뭐가 뭔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어요. 미칠 것 같아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오늘 영화가 완성되었다. 새벽 5시, 이 원고를 쓰고 있는데, 아이들이 작품이 완성되었다며 함께 보자고 한다. 시나리오도 필요 없었다. 자신들의 이야기니까. 장비라곤 스마트폰 하나에 집에 있는 도마와 철물점에서 사 온 대못이 전부, 가슴 속 불덩이와 밤을 새우는 능력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2.

사람은 자신이 겪은 일은 생생하기에 표현이 자연스럽기 마련이다. 나는 아이들이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19년 전 처음 만났던 아이들, 그 중에서 12살 남자아이가 썼던 글이 퍼뜩 떠오른다. ‘살아있는 글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맞춤법이 틀린 것조차 자연스러울 정도로 내용이 생생하다.  

       제목: 도라다니는 이유

        도라다니면 심심하지가 않는다.
        그리고 도라다니면
        엄마생각을 십게 있을 수 있다.
        나는 밤이 돼면
        어디론가 가고 싶다.
        어던 아이랑 아이내 엄마랑
        손을 잡고 도라다니는데 질투가 난다.
        우리 엄마랑 나랑은 언제쩜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랑 놀러도 가고
        손을 잡았으면 조겠다.

        제목: 모금

        나는 대학동에서 놀았다.
        ㅇ형하고 ㅈ하고 ㄱ하고 놀았다.
        나는 매일 모금을 했다.
        모금을 안하면은 먹고 살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레서 매일 모금을 했다.
        하다보니깐
        하기 실을 때도 있었다.
        그러치만 나는 먹고 살레면은 계속
        모금을 해야했다.
        나는 그레서 모금을 열심히 했다.
        모금을 하다보닌깐 질렸다.
        그러나 나는 계속 모금을 했다.
        먹고 살레면은 모금을 해야했다.


3.

단편영화 ‘대못’을 창작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의 상처가 치유되기도 하고 치유방법을 스스로 발견하기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미 겪었던 것이고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말들이었어. 울분을 토한 거지. 사람은 무엇인가 감출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아.”

아이들은 이렇게 영상을 잘 끝내고 그 의미까지 해석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마도 마음 편하게 오후 서너 시까지 잘 것이다. 밤의 행적뿐만 아니라 가슴 속 복잡함까지 공유된 느낌이다. 이러나저러나 대못은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아이들의 현실과 가슴 속은 아직 비극 그 자체이다. 밤낮이 뒤바뀐 아이들, 폭력과 상처로 얼룩진 가정으로 인해 가슴에 대못이 박힌 아이들, 그 가슴에 박힌 대못을 빼주기보다 더 깊게 후벼 파는 사회적 시선......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미성년자, 문제아, 비행청소년, 가출청소년, 양아치, 날라리...... 청소년이 대상인 말들에는 유별나게 수식어가 많이 붙는데 대개는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내는 것들이다. 때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폭력의 책임을 몽땅 뒤집어쓰고 아이들은 심판대위에 오른다.

지난 해 학교폭력과 관련한 토론회에 참석하여 우리 집 아이가 한 발언이다.
“제 안에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분노와 불신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그럴 겁니다. 다만 과거엔 서러움, 억울함, 증오, 절망, 억압, 충동 등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감정들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해서 ‘폭력’이라는 두 글자로 제 자신을 표현했다면, 지금은 그 표현 방식이 달라진 것뿐이죠. 노래 가사로, 음악으로, 춤으로, 희곡으로, 연기로, 제 안에 요동치는 수많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토론과정에서 폭력에 대한 강한 처벌과 그 처벌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아이는 격렬하게 항변했다.
“그래요. 처벌, 두렵지 않아요. 얼마든지 처벌해 보시죠.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 조금도 두렵지 않아요. 더 자유로워지겠죠. 저는 제 안에 있는 분노와 억울함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누군가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오늘날 입시경쟁에 치이고, 거리로 내몰린 우리의 청소년들이 가슴 속 쌓인 분노와 서러움을 단지 폭력으로 표출하거나 억압이라는 또 다른 폭력으로 자신을 해치면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도울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버려진 세상으로서의 거리를 청소년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활동을 하는 무대로 변화시켜가는 데 어떻게 좀 끼어볼 수 있을까를 궁리해본다.

사회문제로서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청소년이 중심이 되고, 그들에 대한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실질적인 뒷받침을 통해 풀어가야 한다. 청소년들이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고, 훈계를 받고, 선도를 받고, 상담을 받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받고, 받고 또 받는 대상으로만 머물러 있는 상태가 이제는 종식되어야 한다.
청소년 문제의 해결은 청소년들에게 부탁하고 또 요청하여야 한다. 그게 정직하고 올바른 방식이다. 청소년들 속에 답이 있다. 그렇게 신뢰가 형성되고, 책임이 주어지고,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게 되면 청소년들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을 새울 것이다.
기쁨과 높아진 자존감으로 발갛게 상기한 얼굴을 보며 정말로 예쁘고 멋진 우리들의 청소년들을 보게 될 것이다. 청소년들의 밤의 행적과 폭발할 것 같은 가슴 속 상처가 더 이상 걱정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