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봄을 좋아하는 나는 겨울이 지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얼음이 녹은 자리에 흐르는 물소리,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 소리, 겨우내 얼었던 가지가 녹으며 꽃망울을 터뜨리는 소리까지 봄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겨울임에도 이른 꽃망울을 터뜨리는 개나리와 동백을 보며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러나 그저 그 뿐, 세상은 잘만 돌아가고 나날이 발전하는 첨단기술과 문명의 이기 속에서 살아 왔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난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명상학교를 찾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스트레스를 조절하며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익히며 여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곳에 재미있는 분들이 있었다. 깊은 명상의 과정에서 자신을 비롯한 자연과 지구의 상태를 바라보고 교감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동화처럼 재미있고 아름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자연과 지구가 중병을 앓고 있어 많이 힘들어한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자연재해 실태와 환경파괴 현장조사를 하면서 황량해진 자연환경만큼이나 인간성마저 황폐해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연성의 회복이야말로 현대사회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라는 가설을 설정하고 연구와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문명의 이기는 누릴대로 누리며 입으로만 환경을 이야기하던 내가 환경에 대해, 지구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 후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연구모임을 만들어 환경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난개발로 인한 자연재해, 늘어나는 생태계 혼란과 인간성 파괴 현상에 대해 연구하고 대책마련을 위한 노력들을 해 나갔다.

또한 선진국 단체나 마을을 찾아 영국을 비롯한 호주, 인도, 미국, 독일 등지로 답사를 다녔으며, 국내 마을들의 성패 사례를 분석하기도 하였다. 5년 여의 모임과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삶의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소비와 경쟁, 소유와 집착의 삶에서 순환과 공존, 나눔과 비움의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 첫 번째 미션이 생태공동체와 대안학교 조성이었다. 2010년 여름의 끝자락,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열망으로 의기투합한 우리는 과감히 도시를 떠나 충북 보은의 나지막한 언덕에 터전을 마련하였다. 연구하며 알아왔던 것, 모두들 실천하자고 외쳤던 바를 구현하는 장으로 생태마을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구성원들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마을을 세워보자는 꿈을 안고 기대리 선애빌이 태동되었다.

*생태적인 삶

선애마을의 주택은 재사용 가능한 자재로 단열을 강화하고 공간을 슬림화하여 에너지 효율을 강화한 패시브하우스 개념으로 지어진다. 1명당 적절한 사용평수인 2.5평을 기준으로 방과 집의 크기를 정해 화목보일러를 도입하여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있다. 그리고 각 주택에는 빗물 집수시설이 있어 텃밭도 일구고, 생활용수로도 사용하며, 정수장치를 통해 식음수로 이용한다. 수세식 변기 대신 생태변기를 사용하여 배설물을 오염물질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퇴비로, 요소액비로 만들어 활용함으로써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마을의 명물이기도 한 공용 생태화장실은 깔끔하고 예쁘게 지어지기도 하였거니와 톱밥과 왕겨 그리고 EM 발효를 통해 자연 속에서 상쾌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으니 선애빌에 들리면 꼭 이용해보기를 권한다.

또한 태양광등, 태양광 축전시설, 태양열 조리기 등 신재생에너지를 실생활 속에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친환경 에너지 자립마을을 꿈꾸며 관련 연구와 인프라 구축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선애마을에서는 친환경, 유기농 먹기리를 생산하고, 자연에서 얻어지는 건강한 밥상을 차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환경, 유기농으로 벼농사를 짓는다며 초보 농군들이 덤벼든 결과 풀 반 벼 반, 투자금액의 반도 회수하지 못한 채 시골 어르신들의 따가운 눈총과 날선 조언에 풀이 죽기도 했다. 하지만 논에 넘쳐나던 메뚜기떼와 수확한 쌀로 만든 떡을 이웃과 나누며 인사드렸던 그 순간의 뿌듯함은 가슴 속 깊이 남아 있다.

허나 그 다음 해도 농사는 잘 되지 않았다. 기술부족이기도 했거니와 친환경 영농을 하려다 보니 많은 노력이 요구되었고, 무엇보다 농약과 비료로 망가진 땅이 회복되기까지 최소 3년 이상은 걸리는 것이라 하니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현재는 영농규모를 축소하여 우리들이 먹을거리와 마을에 오시는 손님들에게 내어드릴 수 있는 정도만 경작하고 있다. 하지만 꿈을 꾼다. 꾸준히 연구하고 실천하여 자연과 교감하며, 자연을 살리는 친환경 농법으로 인간과 자연이 함께 행복하고 풍요로울 수 있는 영농을 말이다.. 영국의 핀드혼 농장은 좋은 롤모델이기도 하다.

영농을 통해 얻는 농작물 외에도 마을 주변에는 먹을거리들이 많다. 이름 모를 풀로만 알았던 씀바귀, 엉겅퀴, 곰보배추 그리고 뒷산에 자생하는 버섯과 고사리, 취나물, 들판의 쑥, 냉이 등 계절별로 내어주는 자연의 넉넉함은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를 맛깔스럽게 양념하고, 요리하면 웰빙 식단이 따로 없다. 마을에서는 이름하여 자연식 밥상이라 부른다.

자연과 공존하고자 하니 자연은 더 많은 선물과 행복한 삶의 지평을 열어준다. 마을에서는 일회용품 줄이기, 쓰레기 줄이기, 가전제품 사용 줄이기, 에너지 낭비 줄이기 등 다양한 생태실천을 하고 있다. 냉장고와 세탁기를 공용으로 사용하는 등 자발적인 실천 결과, 50여명이 살아가는 마을 전체 전기사용료가 한 달에 5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공동식사를 통해 식사 준비에 드는 에너지와 인력 소모를 최소화하고, 음식물 쓰레기 발생을 줄이고 있다. 또한 화학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천연비누와 천연세제를 직접 제조하여 사용하는 등 오염배출을 최소화하고 있어 생태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마을에서는 매주 하루씩 전기 없는 날을 실시하여 환경과 에너지의 소중함을 깨닫고, 생태적인 삶과 대안문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를 매달 한 번 일반인 대상의 생태체험 프로그램으로 개발하여 ‘전기 없는 날의 행복’이란 상품으로 생태관광 인증을 받았으니 체험해보면 좋을 듯하다.

*마을이 학교

사랑의 공동체를 꿈꾸는 기대리 선애빌에서는 다양한 삶이 펼쳐진다. 마을 내 대안학교인 선애학교에는 15명의 학생들이 있는데, 아이들이 삶의 주체로서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당당히 거듭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선애학교에서 교사는 안내자로 규정된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 자신들의 전공을 살려 과목 안내자 또는 도우미로 자연스레 아이들의 교육에 동참하고 있다.

선애학교 아이들은 모두 마을 아이들이다. 마을 주민 모두가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아이들 또한 어른들을 부모처럼 공경하고 따른다. 학교에서 형, 누나들은 동생들을 돌봐주기도 하고, 부모들은 공동육아를 실시하고 있다. 처음엔 어색했으나 아이들도 주민들도 공동체 문화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선애마을은 인근 마을과 품앗이를 하고 있다. 이웃에서는 우리에게 부족한 영농 노하우, 농기계 사용법 등을 전수해주고, 우리는 인력 제공과 의료봉사활동, 재능기부, 천연비누 기부 등을 하며 전통적인 공동체 속에서 나눔 문화를 정착해 나가고 있다.

또한 선애빌 주민들은 명상을 생활화하며, 스스로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한 두 가지 이상 동아리 모임과 세미나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주민 모임에는 선애학교 학생들도 원하면 동참할 수 있는데, 고전 세미나, 영화 세미나, 공동체 연구모임, 판소리 및 풍물 동아리, 오카리나 동아리, 소금 동아리, 탁구 동아리, 합창단, 봉사단 등 다양한 활동이 진행된다.

한편 마을 주민들은 끊임없는 의사소통을 통해 조율하고 합의를 이루어간다. 회의문화는 빼놓을 수 없는 소통기재이며,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근간이기도 하다. 원탁회의, 오픈스페이스, 화백회의 등 다양한 회의기법을 통해 충분한 소통과 의사결정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끼리도 이러한 소통을 하며 원하면 마을회의에도 참석하여 구성원으로 함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선애마을의 주민들은 공동체 속에서 서로 친구이고, 스승이자 학생이며, 주인공이자 관객이 된다. 그렇게 함께 발전하며 진화를 꿈꾼다.

*마음은 넉넉하게, 물질은 소박하게~!

순환과 공존의 삶, 나눔과 비움의 삶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들은 선애빌 곳곳에, 주민들 얼굴과 행동에 묻어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 하고 불편한 삶을 스스로 선택한 이들, 진정한 행복을 찾겠다며 공동체로 들어와 갖은 고생을 하고 있지만 늘 웃는 표정에 넉넉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적지만 필요한 만큼 쓸 수 있고, 소박하더라도 넉넉하다면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선애마을은 욕심내지 않고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삶을 꿈꾸기에 ‘마음은 넉넉하게, 물질은 소박하게’라는 모토 아래 생활한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구분된다.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한 삶은 이내 실망과 좌절로 이어지기도 한다. 생태공동체를 지향하지만 경제적 자립을 통한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허상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이상 실천을 위한 토대를 만들었다면 이제부터는 지속가능한 실천의 장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당면 과제이다.

선애빌이 들어서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좋은 뜻으로 온 건 알겠는데 뭘 먹고 사느냐’는 것이었다. 동네 어른들 눈으로 보시기에 농사를 잘 지어 먹고 살 것도 아니고, 관련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니 걱정이 크셨나 보다. 진정성 확보와 자립은 생태공동체의 정착과 지속가능한 삶을 구현하기 위한 필수조건일 것이다.

선애빌에서는 ‘전기 없는 체험마을’을 테마로 생태마을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구힐링콘서트 등 환경인식 제고와 실천 캠페인을 통해 농촌지역 문화복지에도 기여하고 있다. 또한 천연비누와 효소 등 친환경 제품과 지역의 친환경 농산물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어 나눔과 자립을 위한 움직임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녹색농촌체험 휴양마을로 지정되어 관련 프로그램도 본격 진행될 예정이며, 향후 생태공동체와 귀농귀촌 모델화 사업도 전개할 것이다. 자발적인 움직임과 진정성이 알려지며 동참하고자 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지자체에서도 생태공동체이자 귀농귀촌모델마을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 시작했다.

기대리 선애빌을 조성하며 늘 이야기했던 부분이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만의 마을이 아니라 지역사회, 더 나아가 세상 모두와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 선애빌은 환경과 에너지 문제, 인간성 회복 등 현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조성되었다. 미흡한 점이 많고 어찌 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마을을 이루어 함께 실천하는 곳이라는 것 외에는 드러낼 것이 없다. 다만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모습을 세상에 보이고 사람들 마음속에 한 줄기 희망의 불씨를 밝혀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꾸준한 실험과 실천으로 그러한 모델을 만들어감에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