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현재의 ‘입시 위주 교육’이 문제가 많다며 울분을 토하는데도 왜 정작 현실은 변하지 않는 걸까요?” 어느 고등학교에서 특강을 했을 때 질의·토론 시간에 한 학생이 던진, 안타까운 마음의 질문이다. 나도 그런 울분을 토하는 한 사람으로서 몹시 부끄럽고 미안했다.

나의 대답은 이랬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입시교육이 문제가 많다고 울분을 토하는 건 맞는데, 사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조차 자기 자식만큼은 일류대학에 꼭 보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이미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기존 교육에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는 문제의식보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 다른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러면 왜 일류대학을 나오고 일류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일류인생’을 살지 못하는 걸까요?”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내가 강조한 일류인생이란, 일류대학이나 일류직업과는 무관하게 첫째 자신의 꿈을 찾고 둘째 그에 걸맞게 실력을 쌓은 뒤 셋째 자기행복을 넘어 사회헌신을 하는 삶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질문을 받고 얼떨결에, “일류대학을 나오고 일류직업을 가진 사람들 대다수가 모두 ‘자신이 잘 나고 유능해서 엄청난 대우를 받는 것’이라 당연시하면서 특히 그런 사람들끼리 선후배 관계로 얽히고설켜 일종의 ‘마피아 집단’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죠.”라고 ‘진실’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사실, 나에게도 ‘일류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 선생님은 없었다. 오로지 어른들은 “좋은 대학을 나와야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냉혹한 현실 논리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내 대답을 곰곰 생각해보니, 마음이 비교적 순수한 학생들에게 너무나 강력한 사회적 벽을 성급하게 폭로함으로써 오히려 좌절감이나 절망감을 안겨다준 것은 아닐까, 하고 적잖이 우려된다. 사회경제적 기득권층의 보수성이나 유사 ‘마피아’ 집단의 존재는 도무지 넘을 수 없는 위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다른 학생 하나가 기발한 질문을 했다. “선생님 같은 분이 정치가로 나서서 지금 말씀하신 그런 내용들을 그대로 실현하면 좋을 것 같은데, 혹시 출마하실 생각을 없으신지요?” 사실, 이 질문은 내가 하는 대부분의 다른 시민 특강에서도 종종 나오는 질문이라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내가 학생들에게 강조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생계에 매달리는 삶보다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맥락에서 자기 ‘삶의 디자인’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 다른 하나는 그런 꿈의 길을 가기 위해서라도 ‘사회의 디자인’이 결정적이라는 점이었다.

여기서 그 ‘사회의 디자인’이란 사회라는 집을 멋지게 짓기 위해 필요한 튼튼한 주춧돌 네 가지를 핵심으로 한다. 그것은 첫째, 유기농 중심의 식량자급률 향상과 농촌 공동체 활성화, 둘째, 모든 직장의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셋째, 주거, 교육, 의료 등 문제의 사회공동체적 해결, 넷째, 개성 있는 고교, 대학, 직업 평등화의 실현 등이다. 이 네 가지 주춧돌 위에 멋지고 튼튼한 기둥을 세우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지붕을 올리면 멋진 사회의 집이 될 것이다.

아마도 학생들은 내 강의를 들으면서 “이 사람이 정치가가 되어서 그런 사회적 집을 잘 지어준다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보고 (무슨 직책이든지) 출마 의사를 물은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랬다. “저는 솔직히 마을 이장 이상의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고 이미 책에다 선언해버린 걸요.” 그 말에 아이들이 “우하하~”라며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소수의 똑똑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아요. 중요한 것은 우리 일반 사람들이 참된 사회변화나 교육변화의 내용을 공부하고 토론하여 사회적 분위기를 스스로 바꾸는 것이지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부분에서 잘못된 것이고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따위에 대해서 우리 풀뿌리 민초들이 늘 깨어 있어야 비로소 세상은 변화한답니다.” 이 말에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은 ‘나부터’ 실천을 하면서 ‘더불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나 홀로 꿈꾸면 꿈으로 남지만, 여럿이 같이 꿈꾸면 현실이 된다. 또 오늘만 꿈꾸면 꿈으로 남지만, 매일 꿈꾸면 현실이 된다. 종합하면, 더불어 매일 꿈을 꾸면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이 말에 학생들은 박수를 쳤다.

사실, 우리 교육 현실을 바꾸는 데는 갈 길이 참 멀다. 게다가 이반 일리치 선생의 말처럼 “학교 교육이 사라져야 비로소 인간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 상황에서조차 두 손을 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순 없지 않은가?

지금의 공교육 현실은 크게 두 측면이 바뀌어야 한다. 첫째, 학과 공부는 ‘시민 소양’을 기르는 데 필요한 정도만 하면 된다. 매일 오전만 공부해도 좋다. 평가는 60점 기준으로 절대평가만 해도 된다. 그래야 공부 압박도 없어지고 경쟁 교육이 아니라 협동 교육이 된다. 둘째, 점심 식사 이후 오후 시간에는 ‘자아 발견’을 돕는 교내외 프로그램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악기도 좋고 독서 토론도 좋고 축구나 배구, 수영도 좋다. 음악이나 미술도 좋고 기술도 좋으며 목공도 좋다. 개성이나 꿈에 맞게 자아를 찾아가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날마다 신나고 행복하게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강의에 졸지도 않고 눈빛이 초롱초롱하던 아이들, 좋은 강의에 감사하다며 겸연쩍게 웃던 학생, 책에 사인을 받고자 줄을 서서 기다리던 우리의 자녀들, 내가 “꼭 네 꿈을 이루렴!”이라며 직접 사인을 해주는데 휴대폰 사진을 찍으며 좋아하던 아이들, 뭔가 꿈을 골똘히 생각하느라 입술을 깨문 아이들, 이 모두가 나름의 색깔로 속도로 성장하길, 특히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매순간마다 행복하게 생활하기를 바랄 뿐이다. 나아가, 이 아이들이 좀 더 성장해 앞서 말한 ‘사회의 디자인’을 새롭게 하기 위해 나와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걸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