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의 기둥, 엄지를 찾아라. 그들 앞에 겸손하자

최근 전세계적인 공통관심사로 등장하여 한창 주목을 받고 있는 기후변화와 이를 대비하는 우리 정부의 녹색정책 도입 및 실현과정에서 이해당사자와 실무자에 해당하는 자자체의 민간, 행정 및 교육공무원 연수를 위해 준비된 행사에 강사로 초대되는 기회가 급격하게 늘었다. 이런 강의에 참석한 분들을 격려하고 아름답게 추켜 세워드리고자 늘 꺼내드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우리 모두가 가진 신체기관 중의 하나인 손을 화두(話頭)로 삼는 것이다.
 
실제 우리 모두는 손에서 갈라져 나간 다섯 개의 손가락을 가진 공통점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각자가 가진 손가락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 본적이 거의 없다. 지금 이 시간 이후로도 자신의 모든 삶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하며, 이를 위해 고안된 지구형 문명의 이기를 즐기고 있는 일에서 잠시도 게으른 법이 없는 손가락에 대해 지극히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우며 새롭게 보고자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손가락이 달린 손을 눈 높이로 세워두고 잘 살펴보자.
다섯 개의 손가락이 가진 차이점, 좋게 보아서 개성을 찾아보자. 다섯 개 손가락 중, 네 개는 서로 공통점이 있다. 검지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까지는 마디가 셋이라는 점이다. 이와 달리 엄지손가락은 그들과 다르다. 마디가 둘이다. 출발은 여기서부터다. 똑같은 손바닥에서 출발한 다섯 개의 손가락 중에서 태생적으로 한 손가락만 마치 뭔가 모자라는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재의 주인공이 된다. 세 마디로 된 손가락들을 잘 뜯어보자.
 
둘째인 검지손가락은 가장 잽싸다. 가장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고 누군가를 가르키거나 지적할 때 등장할 수 있으며 도구를 활용하는데 이 친구만큼 다재다능한 손가락도 없다. 너무 부지런해서인지 성할 날이 없을 만큼 크고 작은 일로 늘 상처투성이가 되기 십상이다.
 
셋째를 보자. 일반적으로 키가 가장 크다. 키가 큰 탓인지 움직임은 둘째만 못하다. 만일, 나머지 손가락을 모두 접고 셋째 손가락만 펼친 채 주먹을 내 보이면 아주 상스러운 욕을 상징하게 된다. 그렇게 큰 키로 자라고 깔끔 떨면서 살아온 가운데 녀석은 예를 갖추지 못한, 욕하는데 쓰는 것이 가장 큰 힘이자 '옥의 티'처럼, 결격사유가 되기도 한다.
 
넷째를 보자. 옛말에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던가! 다섯 개의 손가락 중에 가장 움직임이 둔하다. 한번 직접 실험해 보자. 다른 손가락은 모두 접고 네 번째만 세워보자. 쉽게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모자라는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얼마나 울어댔는지 떡 뿐만 아니라, 결혼식에 쓰이는 비싼 반지는 대개 이 녀석 차지다. 어정쩡한 키와 아둔한 몸놀림, 다른 손가락과 늘 같이 움직이려는 무능함을 반지를 끼고 으시댐으로써 어찌 이렇게 교묘하게 극복할 수 있는지 참 놀랍다.
 
마지막 다섯째는 가장 가느다랗고 키래야 엄지손가락과 그리 큰 차이도 나지 않는 새끼손가락이다. 이 친구는 얼굴에 난 모든 구멍은 죄다 들락거린다. 변방에 거주하는 탓인지 자주 다치고 흠집도 잦다. 몸이 약해서일까? 신념도 부족해 보인다. 다른 사람과 약속할 때면 꼭 새끼손가락을 걸고 하는데, 보증인으로 엄지손가락을 동반해야 성에 찬다. 그것도 실제 약속당사자인 새끼손가락은 밑으로 감추고 거간꾼처럼 갑자기 나타난 엄지들끼리 증빙행위를 즐기고 마친다. 그래서인지 약하디 약한 새끼손가락을 동원한 약속은 손이 풀리는 순간, 예비군 훈련에 동원된 아저씨들이 시간이 지나 흩어지듯, 흐지부지 사라지는 약속이 되곤 한다. 그리곤 여리고 약한 손가락만큼 깨진 약속을 두고 오랜 시간 가슴아파한다.
 
이처럼 개성으로 가득한 세 마디를 갖춘 네 친구와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두 마디의 엄지손가락이다. 마디가 하나 부족한 탓에 늘 손바닥을 쫙 펴도 딴청을 피우듯 다른 곳을 본다. 좌우 엄지손가락은 정확하게 90도로 몸을 비틀고 있을 뿐 아니라 머리는 땅을 향하여 수그리는 일이 태반이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엄지손가락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훌륭하고 아름답고 멋지게 해 치운 사람이나 참으로 존경할만한 행동으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킬 때 입술을 열어 칭찬의 말을 쏟아내기보다, 말할 수 없이 흘러나오는 감동을 어금니를 꽉 깨물고 흐르는 눈물이나 기쁨으로 가득한 표정으로 대신한 채, 손가락을 치켜세워 그 의미를 배가(倍加)시킨다. 그 손가락... 누구였던가! 다름 아닌 엄지다.
 
이뿐이 아니다.
누구든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빠져 다른 대상과 싸워야 할 경우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이 다급한 상황에서 비겁하게도 잽싼 둘째, 키 큰 세째, 비싼 반지를 낀 넷째 그리고 늘 깔끔 떨던 다섯째 손가락은 모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엄지손가락 밑으로 기어든다. 주먹을 만들어 확인해 보시라. 사람으로 바꾸어 생각한다면 쓴 웃음이 베어나오는 형상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보고 느낀 실제 사회는 이런 다섯 개가 만든 손가락 세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둘째부터 다섯째까지 손가락들은 모두 갖추고 살아간다. 부와 명예와 권력 심지어 외모와 능력에서도 엄지손가락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렇게 많은 것을 모두 갖춘 채 한 손바닥에서 살고 있는, 엄지를 제외한 네 개의 손가락들은 서로를 본 채 만 채 한다는 점이다. 실제 여러분은 엄지손가락만 다른 손가락과 얼굴을 마주댈 수 있을 뿐 나머지들은 전혀 서로 얼굴을 쳐다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손가락끼리 서로 교류를 해 보려 해도 서로 앞뒤로나 마주하거나 겨우 옆모습만 가까이할 수 있을 뿐 코빼기도 비추기 어렵게 생겨있다. 대신 하나가 모자라는 엄지는 자신의 능력을 알고 다른 손가락과 협력하여 일을 성사시키려 않가는데 없고 만나지 않는 손가락이 없다. 사주팔자를 짚어낼 때도, 손가락으로 절묘한 소리를 낼 때도 엄지손가락만 다른 손가락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엄지는 한가지가 부족하다. 그 부족분을 메꾸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 중이며 우린 그것을 은연중 정말 뼈저리게 느끼고 살아온 것 같다. 그러기에 말로 할 수 없는 존경과 승리의 상징으로 백 마디 말보다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지 않은가!
 
이 사회의 구조와 손가락은 정말 많아 닮아 있다.
많이 배워서 많이 벌어서 키 크고 잘 생겨서 운동을 잘해서 사회적으로 입신한 사람들, 어쩌면 그들은 검지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에 해당하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고 항변하겠지만, 그들은 참으로 인색하다. 그리고 서로 잘 알려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자기네끼리 살아가려 한다. 손이시려 비비려 해도 자기네끼리만 뭉칠 뿐 엄지를 빼놓고 부벼대는 것과 똑 같다. 아무리 따스하게 하려 해도 엄지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그런데 그들을 위해 장갑이라도 끼려면 힘쓰는 것은 온몸을 꼿꼿이 세워 최선을 다하는 엄지와 반쯤 몸을 접은 검지가 전부다. 심지어 벙어리 장갑에서도 엄지손가락은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여러분이 가진 주민등록증에 내가 나임을 밝히고 입증하려 할 때 반드시 있어야만 할 것 또한 엄지손가락의 지문이다. 이와 달리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이 가진 지문은 대개 범죄자들에게서 증거용으로 채취 및 활용된다. 채우려 노력할 뿐 죄를 짓지 않는 것, 엄지의 정신이다.
 
이 나라가 세계 10대 경제국이 되었음에도 우리는 아직도 뭔가 모자란, 추위에서 벗어나려는 듯한 네 개의 손가락이 보여주는 행동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행동들로 가득하다. 가진 자들은 늘 더 가지려 하고 부족한 사람들은 엄지손가락처럼 그들을 위해 희생을 피할 수 없다. 다행히도 다섯 개 손가락이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커다란 박수를 칠 때인 것 같다. 우리 사회에 한가지가 부족해도 이웃과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며 다른 존재들을 지켜내기 위해 평생을 살아가는 존경스러운 엄지 같은 희생정신으로 가득 찬 수많은 분들이 계신다. 전국에 흩어져 있을지언정 늘 이 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모양새를 꿈꾸는 사회단체의 진정한 리더와 개척자 그리고 자원봉사센터를 자기 집처럼 들락거리며 새벽을 여는 분들이야말로 바로 이 시대와 사회 나아가 국가가 존중해야할, 그 가치를 올바르게 칭찬해야할, 큰 박수를 떠나가도록 쳐 드려야 할, 엄지손가락들이다.
 
적어도 환경분야에서 교보생명문화재단은 엄지손가락을 만들고 칭찬하며 그들을 인정해 온 또 다른 엄지손가락이라 할 것이다. 이제 경제적 불안요인도 많이 진정되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보다 여유롭고 풍요로운 세상, 모두가 갖춘 네 개의 손가락이 아닌 하나가 부족하기에 늘 노력하는 엄지가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 2010 새해에 떠올려 본 가장 큰 소득인 것 같아 마음만으로도 흡족하다.
 
여러분과 여러분이 속한 사회...
어떤 엄지손가락을 가지고 계시는가!
한번쯤 돌아보자.

※ 박병권(원광디지털대학교한방건강학과 교수, 환경교육연구지원센터이사장, 한국도시생태연구소소장, 『자연, 뒤집어 보는 재미』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