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칼럼

이희수(중앙대학교 글로벌인적자원개발대학원장)

‘좋은 학습, 좋은 성장, 좋은 인생’

이희수(중앙대학교 글로벌인적자원개발대학원장)

누구나 어렸을 때 한번쯤 읽었을 과학소설의 아버지인 Herbert George Wells는 그의 명작 ‘타임머신’에 빗대어 인생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타임머신을 갖고 있다. 우리를 뒤돌아보게 하는 Memories란 타임머신이 있고, 내다보게 하는 Dreams이란 타임머신이 그것이다.” 살아보니 인생이 별 게 아니다. 가끔 뒤돌아보고 내다보는 것의 균형이자 연속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인지 꿈을 꾸면서 내다보기보다는 기억이란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는 자신을 보며 흠칫 놀란다. 늘 걷기를 좋아하는 내가 며칠 전 전철에서 젊은 친구가 자리를 양보하기에 고맙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내가 할아버지로 보이나 싶어서였다. 서 있는 것도 운동이고 아직은 양보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젊은 자부심에 정중히 사양했다. 그럼에도 오늘만은 메모리란 타임머신을 타고 흘러간 시간 속의 여행을 만끽하련다. 캠퍼스 벤치에 앉아 떠나는 봄날을 붙잡으면서 옆의 친구에게 추억을 나눌 메모리란 타임머신을 잠시 타는 것도 나에게는 정녕 사치일까? 물론 망중한의 한 자락임은 분명하다.

 

모든 사람이 교육을 좋게 보듯이 나도 교육을 근간으로 하는 교보생명, 교보문고에 대해 좋게 생각한다. 50대 중후반인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이 나도 교보생명에 빚지고 교보문고를 보면서 좋은 성장을 해왔다.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오늘날 나의 나 됨은 교보생명에 적잖이 진 빚의 결과라고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너나할 것 없이 가난하던 그 시절에 아무리 못 배우고 가난한 시골의 부모라도 자녀들의 교육보험을 들어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달마다 적금 비슷하게 부은 것으로 기억된다. 다른 하나는 대학시절에 고등학교 다니는 여덟째 남자 막둥이가 방학을 이용해 집중적으로 서울에 공부하러 왔기에, 난생 처음 서울 구경시켜준다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데리고 갔더니 그 규모에 놀라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당시 시골 출신 우리에겐 서울 구경거리 중의 구경거리가 동양에서 제일 크다는 교보문고였다. 그런 동생이 교보문고의 좋은 기운을 받아 서울대 약대를 나와서 제약회사에서 잘 나간다고, 저 재수할 때 도시락 싸 나르면서 뒷바라지한 형을 초라하게 만든다.

 

나는 충북 제천군 한수면 서운리, 100여 호 되는 첩첩산골 분지 형태 마을의 9남매 중의 여섯째로 자랐다. 실은 지금은 아흔을 훌쩍 넘겨 요양원에 계신 어머님께서 11명을 낳으셨는데 맨 위로 둘은 낳자마자 잃으셨단다. 거의 50년이 채 모자라는 그 시절 보릿고개의 이야기다. 이촌 강변에 고창군과 서울시가 함께 가꾸고 있는 보리가 꽤 자란 것을 보니 조금 지나면 절기상으로도 보리타작을 할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 지금도 기억하지만 가장 힘든 일이 보리타작이다. 시골에서도 돌 판에 보릿단을 내려치고 도리깨질과 체질을 하는 가장 힘든 노역이라고 들었다. 가끔은 탈곡기에 돌려서 털기도 한다. 그 때 옆에서 아버님과 형님께 보릿단에서 조금씩 떼어 드리는 일이 내 몫이었다. 어린 필자 편에서는 옷 속에 파고든 보리수염의 따갑고 가렵고 덥고 먼지투성이 기억만 아련할 뿐이다.

 

나의 보리타작 마당은 교육보험과 오버랩 된다. 지금도 생생한 사진이 내 가슴 판에 찍혀 있다. 농사꾼과 달리 깔끔하게 차려 입고, 가방을 든 교육보험 수금원이 타작마당에 들어섰다. 그러자 아버님이 타작을 멈추시고 사랑방에서 지폐 몇 장을 가져다주고 납부 도장 찍힌 보험금 납입 증서를 챙기셨다. 빨간 인주가 아버님의 피처럼 지금도 나의 기억에 선명하다. 그러면서 일하기 싫어 꾀부리는 나에게 다 네 놈 공부시키려고 이 고생하고 보험 들어놓는 거라고 하셨다. 아버님은 일제 소학이고 어머님은 당연히 무학이셨다. 아버님은 소학 덕에 100여 호 되는 제법 큰 동네의 이장이고 유지셨다. 그런 분이 교육보험에 의탁하여 자식에게 미래투자를 알고 하신 거다. 그분들이야 자식사랑으로 하신거지만 가장 수익률 높은 확실한 투자가 교육보험을 통한 자식농사라는 것을 몸소 아신 거다. 그러니 나의 나됨은 교육보험, 교보생명에 맡긴 부모님의 보릿고개를 넘은 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아련한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 터에 글을 쓰려고 교보생명, 교보교육재단과 연수원인 계성원 홈페이지를 들여다보고 좋은 기업이란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라기보다는 인재양성소, 교육기관으로 비추어졌다. 특히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의 인사말인 “고객, 임직원, 투자자,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공동 발전하는 ‘좋은 성장’을 통해 ‘존경 받는 100년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말에서 ‘좋은 성장’, ‘100년 기업’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저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 발전하는 동반성장이 좋게 들어왔다. 교육생태계를 돌보는 농부의 모습으로 비쳐졌다. 유난히 ‘좋은’이란 말을 강조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100년 기업’의 100년은 이 또한 길한 숫자이자 평생으로 읽혀졌다. 교보교육재단에서 평생교육 부문도 시상하기로 하여 교보생명과 평생교육을 연상한 면도 있지만, 한마디로 교보생명은 평생학습조직으로 읽혀졌다. 좋은 게 좋은 것을 낳는다. 좋다.

 

‘좋은’ 이란 말이 나왔으니 좋은 인생을 찾아본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Christopher Darlington Morley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우리대학 화장실의 작은 액자에 들어 있는 Morley 선생의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한 명언과 함께 하루를 살아가므로 나에게는 낯익은 이름이다. 그러다가 평생교육 관련 책의 챕터를 여는 인용구에서 Morley 선생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도 미심쩍어 Google에서 선생의 인용구를 확인하였다. 이름 하여 좋은 인생의 요건이다. “좋은 인생에는 세 가지 가 있으니 그것은 학습, 소득, 소망이다(There are three ingredients to the good life; learning earning and yearning).”순서에도 신경을 쓰신 것으로 보인다. 공부를 하면 소득이 생기고, 소득이 있으면 바라게 된다. 좋은 성장과 좋은 인생의 출발점이 바로 학습이다. 학습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역능자(力能者), 요즘말로 Enabler이다. 학습이 생명의 피다. 학습은 식물의 성장점과 같다. 좋은 학습이 좋은 성장을 낳는다. 학습은 성장에 우선한다.

 

중학교에서 배운 대로 3대 영양소 하면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꼽듯이 좋은 인생의 3대 요소로 학습, 소득, 소망을 꼽은 것은 잘한 일이다. 다 중요하다. 골고루 섭취해야 건강하다. 세상이 변하여 경제제일주의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여기서 학습의 첫 글자 L과 소망의 첫 글자 Y를 제하면 공통적으로 소득을 뜻하는 Earning만 남는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다. 유네스코에서도 평생학습의 역사를 반추하면서 ‘Lifelong (l)Earning’이란 한탄을 본 기억이 난다. 학습은 소문자가 말하듯이 위축되고, 대문자로 표현된 소득은 웃자랐다. 평생학습은 어디가고 소득만 남았는가라는, 평생학습을 지배하는 경제 결정론적 접근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다시 한 번 균형의 중요성을 일러준다. 교보생명은 학습, 소득, 소망을 다 가능케 한 원인자이면서 균형추 역할을 한 것을 나의 반생애가 웅변한다. 좋은 인생이란 것도 결국 학습, 소득, 소망을 다 갖춘 것을 말한다. 게임에는 어게인이 있지만 우리네 인생에는 다시가 없다. 누구나 한번만 살다 간다. 그러니 잘 살다 가야 한다. 교보생명이 표방하는 좋은 성장을 통한 좋은 인생을 누리다 가야한다. 이의 뿌리는 학습이고, 줄기는 소득이고, 열매는 소망이다. 이 모든 것을 담보하는 기름진 터전이 바로 내가 들었던 교육보험이다.

 

좋은 삶을 표현하는 말은 많다. 말 그대로 좋은 인생(the good life), 괜찮은 삶(the decent life), 안녕감(well-being), 행복 등 부지기수다. 유네스코가 정한 평생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삶의 질의 유지 및 향상’이다. 좋은 인생, 괜찮은 삶, 행복, 웰빙 등은 다 삶의 질에 포함된다. 서로 바꿔 써도 좋은 말이다. 좋은 학습, 좋은 성장, 좋은 인생은 서로 연관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평생교육의 목적인 삶의 질 유지 및 제고로 귀결된다. 평생교육이 지향하는 본향인 학습사회는 삶의 전부가 학습이고, 학습의 전부가 삶인 사회이다. 곧 학습과 삶은 동일한 것이다. 평생학습과 삶의 질 간은 불가분의 관계다. 교보교육재단에서 평생교육 부문 시상을 추가하기로 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다양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각광받는 평생교육은 인간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이념 추구를 위하여 태교에서 시작하여 유아교육, 청년교육, 성인전기교육, 성인후기교육, 노인교육을 수직적으로 통합한 교육과 사회교육, 학교교육을 수평적으로 통합한 교육의 총칭이다. 세상은 결국 사람으로 구성된다. 사람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사람을 바꾸는 궁극적인 힘은 교육으로부터 나온다. 그것도 일시적인 교육이 아니라 전 생애, 전 삶의 영역과 깊이에 걸쳐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평생교육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정에서 학교에 이르기까지 삶의 씨줄과 날줄을 촘촘하게 엮어주는 것이 평생학습이다. 인생이란 삼베가 짜지는 것은 평생학습이란 씨줄과 날줄, 교육기회의 수직적 통합과 수평적 통합의 다름 아니다. 평생학습으로 개인과 사회적 섬유 조직이 짜지는 것이니 가히 우리는 평생학습 할 운명체이다. 평생학습 할 힘이 있기에 우리는 우리의 주어진 천명을 주도적으로 운전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인생이란 평생학습을 통한 사회적 존재 양식의 표현이자 자신만의 인생이란 삼베를 짜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1년 전인 1958년에 교보생명을 창립한 대산 신용호 선생의 생애와 어록에서 좋은 학습, 좋은 성장, 좋은 인생으로 이어지는 평생학습의 길을 따라 가본다. 평생교육부문 시상과 관련하여 교보교육재단의 관계자로부터 대산 신용호 선생은 당신 자신이 제도교육보다는 평생학습으로 성장하고, 교보와 주변 사람들을 성장시킨 평생학습자이자 평생교육자라는 말을 들었다. 한마디로 1958년에 교보생명을 창립하여 가난과 절망 속에 있던 국민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 나라의 좋은 성장에 기여한, 인재양성 제1원칙주의자였다. 지금도 우리들과 함께 살아 있는 ‘아이들을 가르치면 조국의 미래가 있다',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다름 아닌 평생학습의 정수이자 당신 삶의 진한 독백이다.

 

대산 신용호 선생의 생애와 어록은 다시 한 번 Herbert George Wells를 떠오르게 한다. 이번에는 ‘투명인간’이나 ‘타임머신’보다는 문명사학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는 문명과 역사를 교육으로 풀어내었다. “역사란 교육과 재난 사이의 경주다.”라고 하였다. 문명의 역사는 교육의 역사다. 대산 선생께서 지식의 근대화 추구를 주문하였듯이 교육이 재난을 앞서면 그 역사와 문명은 번영한다. 교육이 뒤처지면 그 역사와 문명은 재난에 처한다. 정부의 ‘국민안전처’도 우리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평생교육만이 개인과 문명의 평생 안전 지킴이다. 요즘 지구촌 곳곳에 지진, 난민, 전쟁, 테러 등을 포함한 재난재해가 끊이지 않는다. 평생교육이 추구하는 삶의 질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다. 한 조직의 책임자와 위정자에게 임기 중 가장 바라는 게 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사고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원치 않는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보험을 들어야 한다. 국민안전과 문명번영의 최고의 보험은 평생학습이다. 좋은 학습, 좋은 성장, 좋은 인생은 최고의 교육보험인 평생학습으로 이루어진다. 교보생명의 대산 신용호 선생의 생애와 어록에서 이를 확인한다. 좋다.

 

※ 이 칼럼은 관련 분야 전문가의 의견으로 재단의 사업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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