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칼럼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장/'인성, 영화로 배우다' 저자)

좋은 영화를 보면 마음이 커진다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장/'인성, 영화로 배우다' 저자)

 

  레니 리펜슈탈(1902~2003)은 독일의 유명 여성감독입니다. 세계 영화사에 자신의 이름을 굵게 남긴 다큐멘터리영화 감독이지만, 독일에서는 매우 논쟁적인 인물입니다. 리펜슈탈은 빼어난 재능 때문에 아돌프 히틀러의 눈에 들었고, 나치와 독일 정부의 의뢰로 다큐멘터리영화 ‘의지의 승리’(1934)와 ‘올림피아’(1938)를 만들었습니다. ‘의지의 승리’는 나치당대회를, ‘올림피아’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각각 기록했습니다.

 

▲ 나치 선전영화 '의지의 승리' 中     ©

 

  나치는 ‘의지의 승리’와 ‘올림피아’를 통해 독일민족의 우수성을 알리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 했습니다. 완성도가 워낙 뛰어난 영화들이다 보니 선전 효과는 엄청났습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참전하게 된 미국은 이 영화들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나치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독일인의 모습에 전쟁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나치의 강고함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큰 힘을 발휘한 ‘의지의 승리’ 등을 만들었기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리펜슈탈은 미군과 프랑스군에 의해 체포됐습니다. 리펜슈탈은 전쟁범죄 혐의가 적용됐고 재판정에 섰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나치 당적을 지니지 않았고, 단지 나치의 의뢰에 의해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리펜슈탈은 법적 처벌을 면했지만 평생을 주변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리펜슈탈의 일화는 영화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힘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영화의 영향력은 상당합니다. 탄생 때부터 인류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현대적인 의미의 영화를 발명해 ‘기차의 도착’을 첫 상영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극장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고선 실제로 착각해 겁을 먹고 도망쳤던 것입니다. 

스마트폰만으로도 영상을 자유롭게 찍고 편집할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 영화가 전하는 충격은 뤼미에르 형제가 살던 때나 리펜슈탈이 활약하던 때와 같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지닌 호소력은 여전합니다. 영화는 여전히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누군가의 정서함양에 도움을 줍니다.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야한 영화가 정신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청소년기는 신체 발육이 가장 활발하고, 마음의 성장도 가장 왕성할 때입니다. 어떤 영양분을 섭취했느냐에 따라 몸의 성장에 영향을 주듯이,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정신적 성숙도도 달라집니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에서 접하는 짧은 영상만으로도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자체 제작 영상 콘텐츠로 자신이 지닌 지식과 여러 노하우를 자체 제작 영상 콘텐츠로 전달하고, 대중은 이를 별다른 돈을 들이지 않고 쉽게 소비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영화나 TV가 지닌 교육적 역할은 이제 많이 줄어들었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청소년기 인성 형성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체입니다. 영화는 서사를 토대로 발전했습니다. 영화 초창기 고전 문학을 스크린에 옮기는 경우가 많았고, 연극을 그대로 촬영해 극장에서 상영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소설의 서사 구조와 연극의 전개 기법을 참조해 자신만의 서술방식을 개발했습니다. 현실에서 벌어진 일을 그대로 영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 특성과, 독창적인 이야기 기법의 개발로 영화는 관객의 정서를 흔드는 강력한 매체로 거듭났습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극영화는 1시간30분 이상 2시간 내외여야 관객에게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도 파악했습니다. 2시간 안팎의 상영시간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해야 관객의 마음을 살 수 있는지 알게 된 것이지요. 아무리 여러 가지 영상물이 다양한 통로를 통해 쏟아져 나와도 영화의 위상이 쉬 흔들리지 않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탈리아의 영화비평가 리치오토 카뉘도는 1910년대 초반 일찌감치 영화를 ‘제7의 예술’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림 시 노래 문학 무용 연극 등에 이어 인간 정서 함양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영화는 상업영화든 선전영화든 예술영화든 공통점은 지니고 있습니다. 관객을 감동시키기 위한 공감대 형성입니다. 아무리 현실과는 무관해 보이는 SF영화라 할지라도 시대를 반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수백 년 뒤 우주에서 펼쳐지는 액션영화를 보면서도 지금 이곳을 돌아보도록 영화는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 마블 스튜디오 영화 '어벤져스' 포스터     ©

 

  21세기 가장 인기 있는 영화 묶음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할리우드 마블스튜디오가 ‘어벤져스’시리즈나 ‘아이언맨’ 시리즈 등으로 만들어낸 영화 속 가상세계)도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이언맨’시리즈의 아이언맨(또는 토니 스타크)은 21세기 거대자본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건방지고 자기 밖에 모르는 스타크는 자신의 기술력과 재산을 인류의 안전을 위해 기꺼이 내놓습니다. 제아무리 천방지축인 천재 자본가라도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영화는 은근히 암시합니다. 헐크는 어떨까요. 과학실험 중에 방사선에 노출된 후 헐크라는 괴물이 되어버린 브루스 배너 박사의 불행은 현대과학 문명의 어둠을 대변합니다. 헐크는 위험천만한 존재이면서도 인류에 해만 입히는 악당이 아닙니다. 불안감을 안기면서 결굴 인류의 안녕을 위해 행동합니다. 과학을 맹신해서도 안 되지만 배척해서도 안 된다는 교훈을 헐크는 전합니다. 스타크와 배너를 통해 청소년들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곳의 모습을 조금 더 이해하고, 어떤 인성으로 삶을 일궈나가야 할지를 자연스레 깨닫게 됩니다.

  SF영화가 이렇게 사회의 현실과 고민을 반영할진대, 리얼리즘을 내세워 사회 현실을 직시하고 비판하는 영화는 더욱 사회성을 띨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나라의 영화를 보면 그 나라의 역사와 현재가 보이고, 문화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꼼꼼히 보면 사유의 크기를 키울 수 있는 이유입니다. 소설은 상상을 자극하는 묘사를 통해 구체성을 획득합니다. 영화는 구체적인 장면으로 상상을 자극합니다. 책을 읽으며 세상에 대한 사고를 넓힐 수 있듯 영화를 보면 세상이 보입니다. 재미의 추구 또한 영화를 보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지만, 조금 더 깊이 보고자 하는 노력이 더해진다면 청소년에게 영화는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훌륭한 매체가 될 수 있습니다. 

 

* 청소년에게 추천하는 인성영화 세 편

▲ (왼쪽부터)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빌리 엘리어트, 굿 윌 헌팅 中     ©

 

- 공감에서 비롯되는 감동, <두근두근 내 인생>

영화는 주인공 아름이와 주변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공감을 이야기합니다. 타인의 감정에 자신의 마음을 이입하고 동일시하는 과정을 거쳤을 때 우리는 세상을 따듯하게 바라보는 법,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공감은 곧 감동이라는, 삶을 아름답게 하는 힘으로 치환됩니다.

 

- 꿈을 이루기 위한 책임, <빌리 엘리어트>

꿈을 이룬다는 건 개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통해 스스로 행복해지고, 세상을 이롭게 하여 사회적 존재로서 책임을 다하는 일입니다. 주인공 빌리는 자신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 바로 발레를 통해 자기자신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합니다. 나와 타인을 모두 이롭게 하는 꿈,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한 책임의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일은 청소년에게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 스스로를 보듬을 줄 아는 자기존중, <굿 윌 헌팅>

스스로에 대한 불신으로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천재 대학생 헌팅은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맥과이어의 한 마디에 울음을 터뜨립니다. 자아존중감은 세상을 살아가며 만나는 다양한 도전에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이자, '나'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자기자신에 대한 신념입니다. 우리는 모두 헌팅처럼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 이 칼럼은 관련 분야 전문가의 의견으로 재단의 사업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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