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칼럼

신규진(경성고등학교 교사/'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학교 상담' 저자)

호랑이 선생님은 왜 학교를 떠났을까 - 지혜로운 교사의 인성 교육

신규진(경성고등학교 교사/'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학교 상담' 저자)

 새해 교육과정 편성을 앞두고 교육청에서 날아온 인성교육 공문의 글귀가 눈에 띈다.

 “넘버 원(Number One)에서 온리 원(Only One)으로.”

 우리의 교육이 어떤 길을 걸어 왔기에 이처럼 고상한 홍보 문구를 내걸게 된 것일까.

 

 가난이 지겨웠던 기성세대 부모들의 생각은 비슷했다. 가난을 면하고 신분을 상승시키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 학벌을 따면 성공과 출세의 길이 열리니 모든 걸 인내해야 한다. 선생님 말 잘 듣고 공부만 해라. 죽어도 학교에 가서 죽어라. 

 당시 부모들은 자신이 아이에게 어떤 가치를 심어주고 있는지 의식이나 했을까? 부모가 자녀에게 던진 메시지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오직 복종하고 참으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에 힘입어 학교는 사랑이란 이름의 매를 들고 감독관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등수가 내려갔다고, 옆 반보다 평균 성적이 낮다고, 다른 학교보다 뒤처진다고, 그 따위로 해서 대학이나 가겠냐고…. 질책과 훈계가 듣기 싫은 아이들은 이따금 귀를 막고 반항도 했다. 하지만 학교는 아이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치부한 채 소심한 저항들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 둔다고 해서 나아질 것이 없었던 아이들은 졸업 날짜를 손꼽으며 학창 생활을 지속했다.

 

 그렇게 자란 기성세대는 이제 어른이 되어 걱정스런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텔레비전 뉴스와 신문과 인터넷 기사는 엽기적인 사건들로 가득하다. 추악하고 끔찍한 일들이 거의 매일 보도되니, 여기가 과연 인간이 사는 세상인가 믿기지 않을 때도 종종 있다.

 “인성교육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법을 만들어서라도 인성교육을 해야 해!”

 급기야 역사에 유래가 없던 인성교육진흥법이 만들어지고, 이제 각급 교육기관은 인성교육이란 기치를 앞세워 어떤 형식이든 성과를 내보여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무엇을 해야 인성교육이 제대로 될까? 사실 한국의 학교교육은 수십 년 동안 전인교육 혹은 민주시민교육을 전면에 내세워 왔다. 그런데도 학교가 인성을 어여쁘게 가꾸도록 아이들을 돕지 못했다면, 학교교육은 목표 달성에 실패했거나 목표 자체를 외면했음이 분명하다. 여기에 추상적인 법조문을 얹어 놓는다고 해서 요술처럼 인성교육이 이루어질까? 법에서 규정한 예(禮)와 효(孝)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시행령에 맞추어 위원회를 만들고, 예산을 편성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우수 사례를 발굴하면 차차 나아질까?

 

 교육계의 원로 정범모 교수는 학교교육의 목표를 공적인 목적과 사적인 목적으로 구분한 바 있다. 민주시민의 양성은 전자에, 개인의 학벌 취득은 후자에 해당한다. 그동안 대다수의 학교는 사적인 목적, 즉 상급학교 진학에 교육의 초점을 두었다. 하여 1970년대부터 시작된 고교 야간자율학습은 십대 청소년을 졸지에 야간작업 노동자로 만들어 버렸다. 쉬지 않고 기계처럼 공부하게 하는 것, 이것이 국가 인재를 길러내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40여 년이 흘러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지금도 한국의 아이들은 여전히 밤낮으로 공부하는 일의 당위성 앞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시달리고 있다. 

 

 온리 원(Only One)은 개인을 고유하고도 온전한 독립체로 보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는 것이다. 존중! 말은 쉽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교육은 사람과 사람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인성교육의 성패는 전적으로 교사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십대에 접어든 아이들은 비판 의식이 점차 발달함에 따라 어른들에게 배워서 알고 있는 가치 기준을 역으로 투사한다. 바르거라, 참되거라, 정직하라, 배려하라… 누누이 훈계하는 어른들 자신이 실제로 그러한지 아이들도 평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호랑이 선생님이 교사의 표상인 것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호랑이 선생님은 엄하고 무섭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사람이다. 학교가 마을의 중심에 있고 이웃과 이웃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여 있던 마을공동체 시절에는 호랑이 선생님의 따뜻한 일면을 마을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으므로 그가 가끔 호통치고 매를 들어도 대개는 수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매를 들었던 스승을 잊지 못한 제자는 졸업한 후에도 찾아뵙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 도시에는 마을이 없다. 학교와 집이 지척에 있어도 그 둘은 별개의 공간이다. 교사가 학생을 대면하는 시간은 학교라는 장소 안에 국한된다. 학교와 교실 장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만으로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맺어진다. 때문에 과거에 통용되던 처벌이나 질책 같은 훈육 방식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오지 못한다. 교실에서 호통을 치거나 화를 내는 교사는 약자 위에 군림하려는 가해자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애써 화를 참으며 인자한 척하는 것도 인성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물렁하고 우유부단해 보이는 교사에게 아이들이 줄 것은 동정표 밖에 없다.

 

 화를 내서도 안 되고 화를 참아서도 안 되는 딜레마 상황은 교사가 풀어야 하는 가장 어려운 시험이다. 그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학생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지킴이 수준의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 교사의 역할이 역기능을 하게도 된다. 자칫 기분 나쁜 별명으로 불리거나 아이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상태에서는 어떤 형태의 인성교육도 불가능하다.

 화를 내서도 안 되고 화를 참아서도 안 되는,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다. 처음부터 ‘화가 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상상해 보자. 유능한 의사는 환자를 담담하게 대한다. 환자가 욕지거리를 하거나 발광을 하더라도 그의 고통을 응시하며 끄덕일 뿐이다. 교사가 교실에서 문제 학생을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학생이 엇나가는 행동을 할지라도 그의 고통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섣불리 훈계하지 않아야 한다. 그 학생을 오롯이 하나의 우주로 간주하고 존중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력을 미치려면 교사 스스로 솔직해져야 한다. 자신조차 얻어 본 적이 없는 권력이나 지위, 자신도 누려본 적 없는 부와 명예를 목표로 삼으라며 학생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다. 못난 부모는 없다며 효를 가르치고자 한다면, 못난 아이도 없음을 인식하고 아랫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존중받고 사랑받는 경험을 한 아이만이 남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다.

 교사가 성자처럼 될 수는 없는 일이다. 평범하지만 그래도 배울 것이 있는 사람 정도가 되는 것, 그것이 교사의 길이다. 그래야 아이들도 교사를 모델로 삼고 그에게서 배우고자 할 것이다.

 

 평범하지만 그래도 배울 것이 있는 교사가 되는 지혜로운 방법은 무엇일까? 

 장담컨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든 교사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다. 젊은 날 새내기 교사였을 때를 회상해 보라. 방과 후 텅 빈 교실에서, 시끌시끌한 교무실에서, 때로는 낙엽 지는 교정의 벤치에서, 그 어디서든 아이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지 않았는가. 아이들의 생일을 기억하며 축하 카드를 썼고, 아이들과 함께 텃밭에 봉숭아 씨를 뿌렸고, 소풍 날 힘에 부쳐하는 아이의 손을 잡아 끌어주었고, 두 다리 한 짝으로 동여매고 뜀뛰기를 했고, 눈뭉치를 던지며 캐럴을 합창했던 그 젊은 교사 말이다.

 짐작하듯이 젊은 교사란 나이가 적은 교사가 아니다. 젊은 교사는 순수하게 아이들을 좋아하는 교사요, 때로 아이들의 장난질에 골탕을 먹어도 하하 웃을 수 있는 교사다. 담배 피는 아이, 화장하는 아이에게 “나도 그러고 싶었고, 그런 적이 있었어.”라고 말하는 교사다. 젊은 교사는 가출한 아이를 찾아가 어깨동무하는 교사다.

 젊은 교사는 풍부한 경험, 해박한 지식, 높은 지위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가지지 못했다. 그가 유일하게 가진 것은 열정뿐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일에는 젊은 교사가 누구보다 유능하다. 왜냐하면 그는 아이들의 벗이기 때문이다.

 

 벗과 같은 교사는 권위에 기대지 않는다. 학생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함께 세상을 바라본다. 아이들이 아무리 엉망일지라도 끝까지 기다릴 줄 안다. 어쩌면 적어도 열 번쯤 교사를 시험하려 드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다. 아이가 그러는 이유는 어른들로부터 신뢰를 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애틋하게 여기고 이해해야 한다. 때로는 이삼 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아이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될 날이 온다.

 “선생님, 바람직한 삶은 어떤 것인가요?”

 그때 대답해 주면 된다.

 “바람직한 삶이란, 너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은 것을 선택하는 삶이다. 어느 한 쪽에게만 좋은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거든.” 

 

 인성교육은 의도하지 않은 시간, 의도하지 않은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인성교육은 교사와 학생이라는 지시적 관계 혹은 학교와 프로그램이라는 정형화된 틀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긍정적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 이 칼럼은 관련 분야 전문가의 의견으로 재단의 사업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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