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칼럼

한면희(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교수)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생태철학자의 성찰

한면희(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교수)
 
1. 현대 생물권 문화인의 풍요로운 삶
 
선진화된 산업사회의 현대인은 무척 즐거운 삶을 사는 것으로 비춰진다. 예컨대 경기도 분당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서울 강남 소재 대기업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이사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보자. 아침에 일찍 말레이시아 천연고무로 만든 라텍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는데, 그곳은 이탈리아산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치장이 되어 있다. 세수를 한 후에 구운 빵에 커피 한잔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면서 후식으로 과일을 먹는다. 이때 식빵을 구을 때 사용한 식용유는 아프리카산 올리브유이고, 곁들인 치즈는 네덜란드에서 온 것이며, 커피는 콜롬비아의 것이다. 과일은 국내에서 나온 참외와 칠레의 포도, 필리핀의 망고가 나왔다. 식사를 마친 후 집을 나와서 독일산 벤츠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멀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휘발유를 넣고, 그 와중에 미국산 아이폰으로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잠시 차를 달린 후에 사무실에 도착한다. 국내 대기업이 만든 노트북 컴퓨터를 보면서 일을 처리하고, 점심이 되면 약속한 손님과 레스토랑에서 만나 호주산 최상급 스테이크에 프랑스산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한다. 저녁은 한국인인 탓에 된장찌게와 김치, 생선이 나오는 식사를 위주로 하지만, 종종 외국 손님을 접대해야 할 경우 산해진미로 가득 차려진 한정식 식당이나 분위기 있는 일식집을 찾곤 한다. 그리고 주말에는 골프를 치러 야외의 클럽으로 나가고, 연휴가 끼면 가족을 데리고 동남아시아 유명 리조트를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강남 대기업 김이사의 일상생활은 선진화된 산업사회 현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아마도 미국 뉴욕시 맨해튼 월가의 잘나가는 금융인 존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대인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부러워할 생활을 즐기고 있다. 한국 강남의 김이사와 미국 월가의 존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 대부분을 지구 생물권 전체에서 나오는 최고급 산물로 충당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 마디로 지구 생물권의 문화인으로 즐거운 삶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부러워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연말에 유명 연예인이 TV 광고에 나와서 “여러분 새해에는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 이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2. 위험사회 자초하는 현대인의 생활양식
 
오늘의 우리가 누리는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게 되면, 대기업 임원 김이사와 맨해튼 월가 금융인의 호화스러운 삶을 마냥 즐기거나 동경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산업사회의 물질적 풍요는 질병과 죽임의 그림자를 수반하고 있고, 이 그림자가 시간의 경과 속에서 점차 누적되면서 우리에게 찾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넓게 차지하고 있는 아파트에서 냉난방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나 홀로 타는 자동차 운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해외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많이 실으면 실을수록 석유 등 화석연료를 보다 많이 사용하여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게 된다. 물론 온실가스 최대 배출 업종은 산업설비인데, 이곳서 생산된 문명의 이기를 현대인은 한껏 누리고 있다. 이렇게 해서 배출된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을 일으키고, 때때로 태풍의 횟수와 위력을 증폭시키게 된다. 2008년에 미얀마를 덮친 사이클론은 방어 능력이 취약한 어린이 다수를 비롯하여 무려 25만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소비가 늘어나서 경제력이 커질수록 풍요를 향유하는 김이사 및 존과 같은 유형의 계층이 두터워질 것이다. 산업제품 대부분은 화학물질과 관련되어 있다. 핸드폰과 냉장고, TV의 외형 재질은 올레핀인데, 석유 추출물 나프타로 만든 것이다. 화학물질의 사용은 광범위하다. 농약과 제초제가 그런 것이고, 식품에도 깊게 침투되어 있다.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의 유아용 젖병에서 비스페놀A, 스티로폼 용기의 컵라면에서 디부틸프탈레이트(DBP), 비닐 랩과 접촉하면서 배달되는 중국집 짬뽕에서 노닐 페놀 등이 검출된다. 모두 발암성과 연관이 되어 있는 환경호르몬 물질이다. 환경 화학물질이 자연으로 녹아들어 어패류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행세를 한다. 그래서 1990년대에 플로리다 악어 수컷 다수가 암컷화하는 경향을 보였고, 이어서 일본과 영국에서 가자미 수컷의 생식기 이상과 암수 동체 잉어의 다량 발견 등으로 이어졌다. 자연에 나타나는 이상 현상은 점차 누적되고, 먹이사슬 체계를 거쳐 인간에게 돌아옴으로써 사태는 가시화된다. 최근 여아가 조기에 젖가슴이 나오고, 젊은 여성이 유방암에 걸리며, 남성이 생식기 기능 이상을 보이는 현상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화학물질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나타나는 적나라한 모습이다.
 
2009년 하반기에 지구촌 각 나라를 극도의 긴장으로 몰아넣은 신종 인플루엔자 사태가 한풀 꺾였다고 해서 이를 간과할 것은 아니다. 축산업 종사자가 가장 효율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도는 비용-이익 분석에 따라 가축을 컨베이어 시스템의 일부로 취급하여 자동차 생산하듯이 만드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사육되는 닭과 돼지, 소는 불결한 여건으로 인해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항생제가 일정한 간격으로 투여되고, 이것은 인간에게 간접적으로 섭취된다. 항생제 내성을 갖게 된 바이러스가 언제든 출현할 수 있다. 이런 것 가운데 전염력과 치사율이 높은 것이 나타났는데, 미처 치료용 항생제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치명적이 될 것이다.
문제는 지구온난화와 농약의 사용, 환경호르몬의 영향, 항생제 확산에 따른 슈퍼바이러스 출현 등이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현대 산업사회의 구조적 요인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결국 현대인이 한편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는데, 그로 인해 또 다른 한편으로 곳곳에 지뢰와 부비트랩 등 위험요인을 계속 매설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산업사회의 현대인은 점차 위험사회로 가는 미끄럼을 탈 수밖에 없게 된다.
 
3. 초록문명의 생태사회를 꿈꾸며
 
지구 전체로 확산되는 환경상의 위험은 먼저 안전에 둔감한 후진국과 가난한 사람에게 찾아들 것이지만, 마침내 세월이 흐르면서 선후진국과 빈부를 가리지 않고 우리의 미래세대 모두에게 나타날 것이다. 스모그도 민주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환경재난을 수반하는 현대인의 생활양식은 지구 자원을 빠르게 많이 사용하는 산업사회의 체제에서 유래하는데, 이것은 물질적 풍요의 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지배적 세계관과 물신숭배의 가치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지구 생명공동체의 일원인 우리는 미래세대와 현존 동식물 종을 위험사회에서 구해내는 문명사적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이때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문명은 초록의 빛깔이고, 그런 사회는 생태사회라고 할 수 있다.
 
산업문명에서 초록문명(green civilization)으로 이행해야 하고, 산업사회는 생태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산업문명은 지구에 다가갈 때 인간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 즉 자원(resources)의 저장소로만 간주한다. 반면 초록문명은 지구를 생명의 원천(sources of life)으로 여기기 때문에 인간 사회와 자연이 상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세계관 속의 생태사회는 정치와 경제, 문화도 달라야 한다. 생태철학의 사유를 수행하는 미래학자의 눈으로 그런 사회를 조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생태사회의 정치는 열린 개방성을 특징으로 하면서 최대한 시민의 의견을 존중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거대 지역을 각 지역의 생물상이 갖는 특징을 보호할 수 있도록 소규모 문화 공동체로 분화하고, 그 안에서 인터넷을 십분 활용하여 직접 민주주의가 실현되도록 한다. 물론 상위 문화연맹체의 일은 소공동체의 대표자가 합의를 통해 구현함으로써 일반 시민의 의사에 반하는 강압적 권위의 결정이 최소화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건이 조성되는 대로 미래세대 대변인은 물론 각 생물 종의 후견인을 두어 그 의사를 정치적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생태민주주의도 실현한다.
 
경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나 마르크스적 계획경제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양자는 생산성 증진에 우선적 목표를 둠으로써 자연에 대한 희생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생태사회의 경제는, 예컨대 슈마허가 언급한 것처럼 불교의 경제학이나 또는 힌두교, 회교, 유교, 기독교 생태신학의 경제학 등으로 구현되어 다면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모두 신념에 따른 종교적 색채를 띰으로써 행복의 경제학으로 이행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만 자연에 호혜적인 사회로 바뀐 것처럼 그 안에서 종교 간에도 열린 소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런 것의 구체적 모습은 향후 완성을 요하는 과제가 될 터인데, 생태경제학의 접근이 토대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생태경제학자 댈리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실현 불가능한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인간의 경제는 지구 생물권 경제의 하위에 속하고, 지구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기초 단위인 순일차광합성생산량이 일정하므로, 인간의 양적 크기 증가에 따른 물질적인 무한 성장은 불가능하다. 이에 그는 향후 경제가 양적 크기의 증가를 뜻하는 성장이 아니라 질적으로 나아지는 성장 없는 발전의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고 보았다.
 
불교경제학이나 생태경제학의 지평에서 펼쳐진 문화인의 삶의 양태는 생물권 문화인의 그것과 사뭇 다를 수 있다. 예컨대 불교 국가 미얀마나 힌두교 국가 인도, 그리고 동아시아 전통 자연관에 따른 우리의 옛 시절 모습에서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한적한 농촌의 한 중년 부부의 일상을 들여다보자. 남편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된장찌개와 김치, 두부조림 그리고 산에서 캔 취나물 무침으로 차려진 아침을 먹고 논으로 나가 피를 뽑고 또 밭으로 옮겨가 아욱을 심고 고추밭의 풀을 뽑는 등 일을 한다. 부인은 아침 부엌일을 마치는 대로 장이 서는 시장에 나가 집에서 갖고 온 참깨를 팔고 그 돈으로 인근 바다에서 나온 생선과 신발 한 켤레를 사가지고 돌아온다. 점심에는 보리밥에 열무김치 그리고 장에서 사온 막걸리를 찬으로 챙겨서 남편이 일하는 밭으로 나가 점심을 같이 한 연후에 남은 밭일을 거들다가 저녁 무렵에 집으로 되돌아오는데, 들에 핀 야생화 향기에 잠시 취해보기도 한다. 전통 농가의 중년부부가 생활서 필요로 하는 대부분은 인근 생태계에서 구한 것들이다. 김이사와 존을 생물권 문화인이라고 한다면, 이들은 생태계 문화인이다.
 
생물권 문화인이 생태계 문화인에 비추어 특별히 부도덕하다고 할 수 없다. 산업사회에서는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므로 오히려 더 바람직한 유형의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위험사회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 그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지구 생물권의 온갖 자원을 사용하는 비율을 높일수록 그는 자연에 주는 부담을 심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여건이 척박한 아프리카 등에서 일반 민중이 먹는 전통 작물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달러를 벌어들일 올리브 농장을 조성하는 바람에 그곳 민중은 먹을 것 부족으로 빈곤과 기아에 노출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지역 생태계가 파괴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이때 강남 김이사와 맨해튼 존이 이런 일을 시킨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런 사태 전개에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생물권 문화인은 본의 아니게 자연에 대해 무책임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격이 된다. 이런 점에서 시골부부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생태계 문화인의 삶은 생태사회에 적합한 것으로 간주된다.
 
물론 필자가 염두에 두는 생태주의는 옛 시절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자연의 생명부양 체계는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여력이 크고 또 탄력적이다. 소박하지만 가난한 이웃이 적지 않았던 지난날과 풍요롭지만 환경적 위험을 잉태하고 있는 오늘을 함께 성찰하면서 향후에는 새로운 문명을 개척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새로 도래할 생태사회는 탄소발자국의 자취를 거의 남기지 않는 생태계 문화인의 삶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각 지역과 나라 사이에 원활한 교류를 촉진하되, 그것이 정신문화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성해야 한다. 이럴 경우 자연스럽게 생물권 문화인의 삶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지구 자연에 대해서도 더욱 책임을 짊어지는 방식으로 문화적 삶을 사는 새로운 초록문명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 길은 결코 쉽게 성취될 수는 없다. 인간의 욕망이 쉽게 수그러들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인이 위험사회 진입을 가시적으로 체감하게 될 때 합리적 결단을 내릴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그런 결단과 선택은 의식의 전환에서 비롯되는 것인 만큼 생태주의 사유의 지평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런 선에서 결단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라고 본다. 필자는 초록문명의 꿈을 실현할 녹색대학을 만드는 데 열심히 참여한 바 있다. 거기서 현실에 이상향의 뿌리를 내리는 것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절감했다. 지치기도 했고 또 능력도 부족한 탓에 한발 뒤로 물러나 있지만, 바라보기에 애틋하다. 생태사회로 이행하는 길목에서 녹색대학이 다시 피어나서 본연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 한면희 1956년생. 성균관대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 현재 전북대 쌀살문명연구원 교수 현재 한국환경철학회 회장 전 녹색대학교 교수와 대표 역임 전 환경정의연구소 소장 저서로 <초록문명론>, <미래세대와 생태윤리>, <동아시아 문명과 한국의 생태주의>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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