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칼럼

정민승(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평생학습이라는 보석!?

정민승(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방송통신대 학생들을 만나보면, 너나할 것 없이 입학당시 주변의 반응은 ‘의아함’이었다고 한다. 공부가 그렇게 좋냐, 그 나이에 뭐하겠다고 대학에 들어가냐, 참 피곤하게 산다, 고 한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사람들의 반응은 경탄으로 바뀐단다. 보기보다 질기다, 공부 체질이었나보네, 대단한데... 이들의 반응은 공통적으로 ‘공부는 참으로 지겨운 일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지루하고 힘겨운, 그래서 한 맺히고 독한 사람이나 하는 그런 일이 공부라는 거다.

 

하지만 정작 입학해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다. 왜 진작 공부하지 않았는지 후회된다, 공부하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른다, 방송대에 입학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같다 등등. 흥미로운 것은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포기하려고 했지만, 머리가 아팠지만, ‘버티다 보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공부라는 경계의 안과 밖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가 펼쳐지는 셈이다. 공부에 대해 왜 이렇게 다른 평가를 하게 된 걸까? 감히 말하자면, 방송대 학생들은 배움의 본질을, 그 학습의 희열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배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자아가 확장되는 희열의 과정이다. 그래서 배움에는 기쁨이 수반된다. 배우면 배울수록,  의식이 무의식의 영역을 제어하고 풍부화되어, 더욱 삶의 주체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움은 인간 삶의 핵심영역이다.

 

뭔가 즐겁게 배웠던 어느 때를 떠올려보자. 집중과 몰입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감동하면서 노래를 배웠고, 흙집이 만들고 싶어 건축기술을 배웠을 것이다.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내면의 충만함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배움은 그렇게 내면의 역동을 만드는 과정이다. 배우려고 하는 순간, 우리 인간의 내면은 순진하게 열린다. 자만하던 자아의 벽은 엷어지고, 외부의 가치가 내면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해서 배움은 내면의 지평을 넓히고, 자신을 겸허히 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겉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는 때는 없으며, 홀로 고독에 빠져있을 때만큼 덜 외로운 때도 없다.” (한병철(2012) 피로사회. 문학과 지성사. 45쪽 재인용. 키케로가 『공화정에 대하여』에서 원용한 바 있는 카토의 경구를 한나 아렌트가 인용한 내용이다. 한병철은 현대 사회의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 문장을 가져온다.)

 

다시 말해, 배움은 내적으로 역동적인 상태이며, 잘 배우면 앎이 주는 고유의 희열이 마음에 차오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학습이 즐겁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묘한 ‘잘난 척’이 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배움의 전당’인 학교에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몰라서 배우러 왔는데, 이것도 모르냐고 구박을 받았다. 알고 싶어서 물었으나, 가차 없이 비난을 받고 심지어 맞기도 했다. 감동과 몰입은커녕 평가와 처벌의 시간만 가득 했다. ‘배움의 전당’에서 상처를 받으니, ‘배움’은 쓰라린 어떤 것이 되었다. 게다가 이런 상처는 자아에 낸 생채기라, 쉽게 아물지 않는다. 당연히, 배움이라는 말 자체가 싫어진다. 배움이 즐겁다는 말을 쓰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길다! 앞서 방송통신대의 학습자를 이야기했지만, 즐거운 성인학습자의 사례는 학교 밖에서 더욱 차고 넘친다. 창신동의 한 모임에서는 마을 라디오를 만들고, 평생 봉제 일을 해 온 아주머니가 주인공이 되어 글을 쓰고 노래를 하고 봉사를 하면서 ‘내 인생 처음’하는 배움 활동들을 전개한다. 안양의 한 마을에서는 엄마들이 모여 아이돌보기를 품앗이하면서 육아 공부를 하다가 작은 학교를 만든다. 사이버상의 한 모임에서는 개인방송을 통해 할머니와 손녀가 대화를 나누며 세대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친구들끼리의 모임에서 나온 미투 주제 덕에, 젠더모임이 결성되어 페미니즘 책읽기를 시작하기도 한다. 다만 이 활동을 배움이라 말하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한편으로는 배움이 아닌 것을 배움이라고 칭하면서 배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배우면서도 배움이라 명명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평생교육은 이런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등장한 말이다. 사실, 평생교육이라는 말을 들으면, 평생 뭔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디스토피아가 떠오른다. 학교로도 충분히 괴로웠는데 평생 공부를 하라고? 하지만 평생교육의 메시지는 그게 아니다. 학교로 인해 잃어버린 배움의 본질, 인간의 삶에 이미 녹아있는 배움의 즐거움을 다시 찾자는 것이다. 이미 전개되는 성인들의 즐거운 교육론, 안드라고지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배움을 배움이라 부르자는, 배움의 추동력을 마비시키는 제도적 폭력들을 학교밖 학습사회가 함께 제거해보자는 제안이다. 

 

그러면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한번 생각해보자. 아주 어릴 적, 우리는 어떻게 말을 배웠을까? 칭찬을 통해서였다. 물론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는 수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한다. 수만번의 ‘엄마’, 수천 번의 ‘맘마’를 들은 후에, 아기는 겨우 ‘음..마’ 정도의 소리를 내뱉는다. 중요한 것은 반복이 아니라 그에 대한 주변의 반응이다. 아기는 실수로 소리를 냈을 뿐인데, ‘음마’라는 말끄트머리에 경탄과 환호가 이어진다. 아이의 말은 곧 맘마는 엄마로, 빠빠는 아빠로 이어진다. 칭찬과 격려가 배움을 이어가게 해주는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자. 우리는 어떨 때 배우지 않는가? 개입당할 때이다. 자아감각이 생겨나는 세 살 경이 되면 아이는 ‘싫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조금 더 커서 사춘기가 되면, 부모가 조금이라도 관여하려는 낌새만 보여도, 그 일은 안하겠다고 비퉁그러진다. 문제로 볼 일이 아니다. 자기의 주체성을 침해하는 배움은 거부하겠다는 멋진 독립 선언이다. 자기가 배움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도전하고 거부하고 실패하는 배움이 인간 배움의 핵심이다. 

 

사람들이 주체성을 가져나가도록 돕고 칭찬하는 것. 이것이 시작지점의 자세일 것이다. 평생교육의 철학을 담은 들로어 보고서(Delor Report)에서는 <평생학습의 네 가지 기둥>을 제시한다. ‘알기 위한 배움’, ‘일하기 위한 배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배움’, 그리고 ‘존재하기 위한 배움’이 그것이다. 한편으로 각 기둥은 학교-직업-시민사회-가정과 같은 영역으로 구분될만큼 큰 차이를 가지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기둥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면서 최종적으로는 존재하기 위한 배움으로 나아간다. 존재하기 위한 배움은 존재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기도 해서, 자신을 제대로 인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배우는 것이 일상이고, 일상이 제대로 배우는 공간이 되는 그런 학습사회를 지금, 여기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정련된 지식이나 정보를 암기하거나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관계들과 이 관계들에 상응하는 독특성들 안으로 침투하는 것이다.”

 

평생교육학자가 아니라 철학자 들뢰즈가 제시한 배움에 대한 재정의다. 결국,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배움에서 떠나, 새로운 배움의 개념으로 나아가야 한다. 학교에서 떠나 일상으로 나아가고, 자신의 내면과 더불어 세계의 짜임이 바꾸는 일을 해보야 한다. 그리고 칭찬해야 한다. 배움은 나뿐 아니라 세계를 다르게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직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에셔의 그림 하나를 보자.

 

▲ 마우리츠 에셔(Maurits Cornelis Esche)의 ‘그리는 손’, 1948, 석판화     ©

 

손이 손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그리는 손이 그리는 손을 바꾸면 그리는 손이 바뀐다. 우리는 아무개로서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존재는 ‘이미 있음’이라거나 ‘그냥 있음’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 그려가고 그렇게 해서 새롭게 그려지는 과정 중에 있는 ‘어떤 있음’이다. 존재는 계속적인 합성의 과정이다. 어떻게 합성하는가? 배움을 통해서이다. 하지만 배움은 어떻게 가능한가? 내가 배우기 때문이다. 제대로 배우는 사람들은 자기가 접한 대상을 신비로운 상형문자처럼 대한다. 대상과의 매번의 마주침을 새롭고 다시 봐야 할 것으로 여긴다. 

 

사실, 많은 평생교육사업들이 기존의 교육사업의 틀 안에서 진행되고 있기도 하고, 평생학습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깊지 못한 상태이다. 하지만, 배움의 기쁨에 주목한 상당수의 성인들이 이미 소외된 학습의 경험을 떨구고 새로운 학습생태를 만들어가고 있다. 학습동아리를 만들고, 학습마을을 꾸리고, 학습집단을 구성하면서, 새로운 존재를 구현하는 배움을 진행하고 있다. 학교 밖 일상에서, ‘진짜 배움’의 보석을 건져올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 배움이라는 보석Learning : the treasure within(Learning: the Treasure Within는 유네스코 1996년 보고서의 제목으로, 앞서 말한 ‘들로어 보고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에 주목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답답하고 암울한 정태적 상태가 될 것 같다.

 

평생학습은, 손을 그리는 손, 그가 잡은 펜일 것이기 때문이다. 

 

 ※ 이 칼럼은 관련 분야 전문가의 의견으로 재단의 사업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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