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칼럼

우신영(인천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문학을 읽으면 착해진다고요?

우신영(인천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1. 우리 청소년들은 진짜 인성이 부족한 걸까?

 

  인성교육에 대한 교실 안팎, 사회 안팎의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구호(slogan)가 대개 결핍을 반영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인성교육에 대한 절박한 요청은 미래 세대 구성원들의 인성이 상당히 난감한 사태에 처해있음을 방증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우리 청소년들의 인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자주 들려옵니다. 언론을 통해 매일같이 보도되는 학교폭력이나 왕따, 스마트폰 중독, 세대 갈등 등을 상기해보면 그러한 우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2019년 한국,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의 인성은 정말 부족한 것일까요?

 

  한때는 중등학교 교단에서, 지금은 대학교 강단에서 그들을 만나온 저로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지금 우리 청소년들의 인성은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불안한 상태에 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합니다. 교육학자 래스(Raths)는 청소년들에게 보이는 많은 문제가 지식의 결핍이 아닌, 가치의 결핍과 이에서 파생되는 가치불안 때문이라 규정한 바 있습니다. 현대는 불안의 시대로 종종 명명되거니와 과연 현대인들은 매일 어떤 가치가 옳은지 시험대에 오르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가치가 혼재하고 가치에 대한 보편적 합의는 예전보다 어려워졌지요.

 

  먼 과거에는 어떤 나라, 어떤 마을,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면 대개 그 공동체의 규범과 가치를 따르며 사는 것이 권장되었습니다. 얼마나 그것을 잘 따르느냐가 인성의 바로미터였지요. 내 부모나 이웃이 바람직하다 하는 삶이 곧 내가 추구할 가치였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다릅니다. 다양한 가치 중 무엇을 자신의 가치로 삼을지 원천적으로 열려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현대인들은 누구나 가치판단의 순간에 놓여 있는 자기 입법의 주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입법의 자유와 책임을 함께 견뎌야 한다는 것은 때로 고통스럽습니다. 

 

  가뜩이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가치의 다양성과 상대성은 더욱 강렬한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아직 자신만의 가치를 확립할 만한 삶의 두께가 갖춰지지 않은 청소년들은 더욱 더 가치불안에 떨 수밖에요. 그래서 불안한 청소년들은 자신만의 가치를 탐색하기보다는 또래나 세속의 가치를 맹목적으로 추구해버리기도 하지요. 그들의 인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불안하다는 제 판단은 이런 점에 근거합니다. 

 



2. 청소년들에게 부족한 것은 인성이 아닌, 인성을 함양해줄 어른-학교-사회

 

  겉으로는 개성과 창의를 부르짖지만 정작 튀는 학생에게는 낙인을 찍는 학교, 말과 행동이 다른 어른들, 부조리로 가득 차 보이는 사회, 이 모든 것들이 삼면입체냉각시스템처럼 우리 청소년들을 죄어오고 있습니다. 분명 학교는 이제 청소년들의 성적보다는 꿈과 끼에 관심을 주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공교육 12년이라는 긴긴 시간 동안 열등생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학교에서 머무릅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가 학교에서 진정한 주인공이 되는 날은 드뭅니다.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은 바르고 참되게 살라고 청소년들을 타이르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반면교사 같은 행동을 거듭하지요. 자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녀가 가져야할 삶의 주권을 빼앗아 마구 휘두르기도 합니다. 매일같이 언론을 장식하는 사회의 치부들은 어떻고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쑥스럽기만 할 따름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많은 청소년들과 어른들이 서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곤 합니다. 어른들은 우리 청소년들이 무례하고 인성이 부족하다 탓합니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권위적이고 이중적이라 탓합니다. 사실 그런 어른과 청소년들의 대립 속에는 서로에게 이해받고 공감 받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불만 속에는 든든히 기댈 어른을 찾는 어린아이가 숨어 있고, 어른들의 비난 속에는 자신들이 공들여 이룩한 사회를 이어받을 참된 미래 세대를 기다리는 기대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 세대 간의 갈등은 혐오와 원망이 아닌, 이해와 공감으로만 치유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와 공감의 마스터키(master key)를 갖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에게 저는 문학을 추천합니다.

 

3. 이해의 열쇠, 공감의 알약, 인성의 사다리인 문학 

 

  문학은 쉽게 말해 거짓 이야기입니다. 흥부도 춘향이도 심청이도, 그리고 찰스 스트릭랜드도 실존인물은 아닙니다. 문학의 언어로 빚어진 가짜 인물들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참된 인간성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됩니다. 흥부를 보며, 엄혹한 가난 속에서도 부러진 제비 다리를 묶어주는 연민의 능력을 잃지 않는 인간의 품성에 감탄할 수 있습니다. 춘향이를 보며, 죽음의 위협 앞에서 사랑하는 이를 위해 뜻을 굽히지 않는 인간의 용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청이를 보며, 앞 못 보는 아비가 개안하기를 희망하며 차가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여인의 행동이 옳은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스트릭랜드를 보며, 재산과 성공을 상징하는 '6펜스'의 삶을 추구할 것인지 예술과 혼신을 상징하는 '달'의 삶을 추구할 것인지 고민해볼 수도 있지요.

 

  문학이 열어주는 이 감탄과 이해와 가늠과 고민의 마당 속에서 우리는 새삼 더 나은 삶, 더 선한 인성, 더 온전한 세계를 추구할 힘을 얻습니다. 문학 독서를 통해 그 힘을 얻기 전의 ‘나’와 얻은 후의 ‘나’는 결코 같은 ‘나’가 아닙니다. 물리적으로는 여전히 같은 ‘나’일지 몰라도 한 권의 책을 통해 화학적으로 달라진 ‘나’로 변신하게 되지요. 박완서 작가는 말했습니다. 책장을 덮고 났을 때 갑자기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달라 보이게 만들어야 진정으로 좋은 책이라고요. 일상의 나태나 안락, 피곤을 ‘도끼’처럼 깨고 들어와 내면의 깊이는 한 뼘 더, 인간성에 대한 탐구는 한 자 더, 늘려주는 것이 문학의 힘입니다. 그러니 문학을 이해의 열쇠이자 공감의 알약, 인성의 사다리로 예찬하는 제 언어가 헛된 과장만은 아닐 것입니다.    

 

4. 문학과 놀며 인성을 가꾸는 방법

 

  때로는 문학의 인성교육적 기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학을 읽는다고 독자가 바로 선해지는가?”, “문학작품 속에는 비윤리적인 내용도 상당하지 않은가?” 이상의 두 질문이 대표적인 반론이지요. 이 두 질문은 결국 하나로 합쳐질 수 있습니다. “그 자체로는 선하지 만은 않은 문학이 어떻게 독자를 선하게 할 수 있는가?” 물론 문학 속에는 악한 인물도 나오고, 흉한 사건도 나오며, 왜곡된 세계도 나오니 그런 질문은 당연할 수도 있겟습니다. 위 질문이 “문학이 즉각 사람을 ‘선하게’ 만들 수 있는가?”는 의미라면 답은, “아니다”에 가깝습니다. 문학은 독자를 ‘새 나라의 착한 어린이’로 만들어주는 것과 그리 큰 연관이 없습니다. 문학을 많이 읽어 사람이 즉각 착해진다면, 학교에서 문학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들은 모두 착하겠지만 실상 그렇지는 않지요.

 

  하지만 이 질문이 “문학이 독자로 하여금 ‘선하고 좋은 삶’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는가?”라면 답은, “그렇다”에 가깝습니다. 문학의 경우 일반적인 도덕의 잣대로 판단하기 어려운 인물들의 삶이나 갈등이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 독자는 어떤 삶이 더 좋은 삶(Good life)인지 손쉽게 추론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텍스트를 접할 때 독자는 부단히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 삶의 모습인지 탐구하게 되며, 독자 자신의 인간성에 대해 성찰하게 됩니다. 즉 문학은 (일부 어른들처럼) 특정한 덕목을 강요하는 대신 물음을 던집니다. 그리고 문학이 던져주는 이 질문은 묵직한 벽돌처럼 화두가 되어 독자의 삶 속으로 침잠합니다. 독자는 살아가는 내내 문학이 던진 그 화두에 답을 찾아 방황하며, 괴테가 말했듯 방황한 꼭 그만큼 성장합니다. 

 

  문학은 청소년들을 어른들이 원하는 ‘말 잘 듣는 어린이’가 아닌, 공감하고 질문하며 때로는 따지고 들 줄도 아는 ‘피곤한 청소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피곤한 청소년’이야말로 미래의 세계를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주역이라 믿습니다. 저는 이 세계를 그저 주어진 규범에 순응하며 타인의 시선대로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맡기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나와 다른 이에게 공감할 줄 알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투할 줄 알며, 함께 고투할 친구를 책 속에서도 책 바깥에서도 찾아 연대할 수 있는 청소년들이 미래 세대가 되어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저는 오늘도 청소년들이 아름다운 문학을 읽고, 재미있는 문학과 놀며, 그들만의 문학을 써나가기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 위 칼럼은 관련 분야 전문가의 의견으로 재단의 사업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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