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으로 시대적 요청이 된 생태환경적 인식
 
오늘날 생태환경적 각성은 시대적 요청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되는 생태론적 패러다임이 현실에 대한 새로운 비전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데 많은 이들도 동의하고 있다. 이는 ‘근대화 프로젝트’와 더불어 한국 사회를 유형지어 왔을 뿐 아니라, 우리의 문화를 지배해 온 낡은 가치관으로는 건강과 살림, 환경의 질과 사회적 관계, 경제, 정치, 기술, 교육 등에 걸쳐 심화되고 있는 여러 위기들을 극복할 수 없다는 자각이기도 하다. 생태환경적 각성은 수질 산성화, 대기오염, 토양 침식, 해양오염, 산록의 변화, 지구온난화, 사막화 현상, 오존층 파괴, 생물종의 급격한 감소와 같은 자연환경문제를 지구라는 하나의 ‘생태계’가 처해있는 심각한 위기의 징후들로 인식하게 되면서,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불러오게 하였다. 생물학의 하위분야로서 시작한 생태학을 메타이론으로 확장시키면서 대두된 ‘생태계 ecosystem’라는 개념은 ‘생태계 내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강조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사회 구조에서 그리고 개개인의 일상생활에서 새로운 생태론적 패러다임으로 제시되었다.

‘생태계’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와 비생명체가 서로 ‘연관’과 ‘순환’의 체계를 이루면서 하나의 ‘복잡계complex system’를 구성한다. 이 ‘생태계’에서는 인간이든, 곤충이든, 돌이든, 꽃이나 나무이든 모두가 ‘생태계 내적 존재’이다. 인간이라 해서 생태계 외부에 존재하면서 이 체계를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 조정, 지배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단지 이 체계의 내부에 존재하면서 체계의 원리에 따라 생태계를 한계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뿐이다. ‘생태계’에서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이 개별자로서 뿐만 아니라 이웃과 미래와 함께 하는, 시·공간적 보편자로서 존재한다.
자연환경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문제들 간의 연관성이 매우 복잡하고 범위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개별적 사안으로는 깊이있게 다룰 수 있지만, 전체를 한데 엮어 결과를 예측하기는 매우 힘들다. 결과를 단호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4대강 사업과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 싼 첨예한 갈등을 생각해보라).

그러나 자연환경문제로 드러난 환경 위기가 우선적으로는 모든 생물의 위기와 관계되지만, 이는 곧 인간의 사회적 활동으로 초래된 생태계의 재생산 위기를 의미하게 되고, 나아가 현대 사회 존재방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현대 문명의 위기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렇게 거시구조에서 배태되고 충족될 것으로 보이는 환경 위기가 궁극적으로는 미시적인 욕구와 욕망에 기반하고 있는 일상의 위기를 뜻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매우 추상적으로 보이고 멀게만 느껴지는 지구적 차원의 자연환경 문제일지라도 몇 단계 연결 경로를 거치게 되면 우리 자신 각자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로 되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렵다는 이유로 자연과의 관계를 합의 방법에 대한 절차적인 것으로 짐짓 축소해 버리거나, 우리 인간의 모든 활동의 전제조건을 아예 배제해 버리려는 태도가 지배적이어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자연환경문제가 우리 인간들의 삶 외부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자연환경 변화에 그치지 않고, 그 자연환경과 더불어 공진화하는 모든 생물체들에게 다양한 차원에서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생물체와 연관을 맺고 있는 무생물들의 변화도 포함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결과의 불확실성 때문에 자연환경문제가 인간과 사회에게 요구하는 성찰적 지평(지구의 인간과 사회는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가 그리고 지구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인간이 생태계 내적 존재인 한에서, 인간이 자연의 일부인 한에서는 생태계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고, 인간은 책임과 의무를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태론적 인식은 근대 사회를 지탱해 온 인간의 자연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적 자연관이나 인간중심주의적 가치관의 오류를 명백히 드러내준다. 또한 어떤 존재도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어떤 생명체도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이웃과 미래사회, 다른 생물체와 무생물체, 자연에 대한 배려를 인간에게 요구한다. 따라서 인간의 한계 능력에 대한 겸허한 수용, 미래 세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실천적 노력은 생태론적 인식을 구성하는 한 축이 되고 있다.

생태론적 인식의 실천적 통로는 두 가지 방향을 지니고 있다. 한 방향은 근대사회의 지배이념 및 가치가 인간중심적(‘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이고, 이원론적(마음-몸, 이성-감성, 정신-물질, 남성-여성)이며, 위계적인(중심에 딸린 주변, 공적인 것에 숨긴 사적인 것) 근대적 자연관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고 이를 심층적이고 다차원적으로 비판하는 것이고, 또 다른 방향은 이성 또는 과학의 이름 아래 억압되고 배척되어 온 것들, 즉 외적 자연과 사회적인 타자, 그리고 인간 자신에게 있는 억압된 자연(신체, 본능과 같은)에 대한 회복과 치유, 존재 긍정을 통한 대안의 노력이다.

두 방향이 실천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개발보다는 보전을, 집중보다는 분산을, 차별이 아닌 평등을, 물질보다는 영성을, 소유보다는 공유를, 폭력이 아닌 평화를, 착취가 아닌 호혜를 자연생태계가 함축하고 있는 긍정적 가치로 제시하면서, 인간의 실천적 덕목으로 겸손과 절제, 자기자신과 타자에 대한 배려의 윤리를 공통적 토대로 삼고 있다.
 
2. 대안문화의 필요성 : 생태적 감성, 미적 상상력을 매개로 한 생태적 문화
 
지구상의 인류는 단순히 생명을 영위하며 우주 생명계에 속한다는 생물학적이고 진화론적인 차원 외에도, 지구 곳곳에서 언제나 참으로 다양한 문화와 생활양식, 그러면서도 지극히 보편적인 가치를 역사적으로 발현시켜왔다.

진화과정과 역사에 따라서 문화에의 의존도는 증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여전히 문화를 외적이고, 부가적이며, 본래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치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완전하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문화적 현상들은 단지 삶이 지속되는 동안에만 외부적으로 결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삶이 교육이나 다른 요소들에 의해 다양한 방법으로 영향을 받을 수는 있어도 기본적인 정체성 혹은 존재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고도 생각한다. 인간을 자연과 무차별적으로 동일시하는 생물중심주의에서는 문화가 간과되는 경향이 있는데, 문화는 인간의 본래적인 자연현상이므로 지구적 삶의 문화적 차원이 도외시될 수는 없다.
 
지구생태계를 진화론적이고 생물학적으로만 강조하다보면 세계와의 교감, 우주적․자연적 전체에의 참여를 목적론적으로 강제하게 될 우려가 있고, 자연의 합목적성이 생태적 감성의 ‘가능성’, 또는 ‘차이’로 드러날 때 구성되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들과 가치들을 간과해 버릴 수도 있다. 오히려 생태론적 인식은 생태적 감성, 미적 상상력을 매개로 해서야 비로서 지구생태계를 전일적인(옴살스러운)holistic 전체로 기억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삶을 전망할 수 있다.
 
생태적 문화는 생태계 내의 존재들과 그들의 연관 그리고 순환 체계들이 인간의 감정과 사고들, 언어들과 행위들을 통해 받아들여진(감성적으로 지각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감성적 지각은 감정을 야기하는데, 감정은 쾌·불쾌의 감정만이 아니라 느낌, 정서, 직접적인 정서적 태도 등을 포괄하면서 다양한 연상을 통하여 의미를 수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 다양한 연상들이 현실의 전체, 즉 ‘우리의 세계로 받아들여진 지구’ 전체를 포괄하게 된다. 생태적 문화는 작고 가까운 것으로부터 크고 먼 것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술적 상상력과 거시세계를 미시적 세계로 끌고 들어올 수 있는 서사적 상상력을 토대로 지구생태계를 ‘우리’의 세계로, 미적으로 해석하고 매개한다. 1)
 
미적 현실은 미적 대상들을 넘어서는, 또는 대상들에 덧붙여지는 은유와 상징, 해석, 비평, 이론의 총체이다. 미적 현실이 그저 가상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동일한 물리적 구조를 지닌 대상이라도 해석에 따라, 비평에 따라, 이론에 따라 전혀 다른 현실적인 의미적 존재, 미적 존재가 된다. 미적 가상은 이미 현실이 존재하는 방식이 되어 경화된 실증적 현실을 벗어나 움직이며, 변화하는 현실을 미적으로 선취한다. 따라서 미적 현실은 생물학적 현실 또는 실증적 현실보다도 더 실제적일 수 있다. 미적 상상력을 보편적 능력으로 지니고 있는(미적 능력은 소위 ‘천재’로 불리우는 소수자들이 지닌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부여된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능력이다) 인간은 단지 물리적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물리적인 세계를 의미의 세계, 미적 현실로 변화시킨다. 이 미적 상상력과 미적 현실을 우리는 문화와 문화적 행위로 부르는 것이다. 문화에 기대어 인간은 자신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전달하고 삶을 지속한다.
 
생물중심주의자들과 달리 문화주의자들의 경우는, ‘문화’를 인간이 창의와 노동을 통해 자연에 부가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과 다르고 심지어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제작물, 기술, 도시 등 대표적인 문화적 현상으로 여겨지는 것이 자연적 현상과는 분명히 구별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화현상들이 자연과 무관하거나 자연 외적인 것, 비본래적이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아직도 물리학의 법칙, 진화의 법칙, 무의식적 충동, 정신적·육체적 노화, 생물학적 유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그런 한에서 여전히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공적인 문화 또한 자연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연의 기반 위에서 자연과 함께 존재한다. 문화적 생산은 다양한 종류의 자연을 통해 성립되기 때문이다. 다만 문화와 문화적 행위는 인간에게 고유한 기술적이고 상징적인 체계들을 통하여 자연적 자연과는 또 다른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자연이 되고 있는 것이다.

생태환경적 각성이 진작시킨 문화가 문화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문화와 다른 점은 문화를 자연의 외부적인 것, 비본래적인 것으로 분리하지 않고 자연의 고유하고 본래적인 구성요소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이미 1970년대 들어 여러 나라, 여러 도시에서는 생태환경적 각성이 광범위한 실천으로 옮겨지면서, 인간과 지구상의 다른 생태 종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을 진작시키는 가치들을 포용하고 구현하는 대안문화들이 기성문화와 공존하게 되었다. 흔히 ‘생태문화적 창조자들’이라 불리우는 이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대안문화는, 이들의 주장 때문이 아니라 이들의 생활양식때문에 기성문화와 구별되고 있다.
 
생태문화적 창조자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들의 전일성이다. 예를 들면 자연적인 건강음식과 함께 삶에 활력을 주는 내적 체험을 중시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상관적인 건강관리를 지키려하고, 일정 부분이 아닌 전 과정을 담은 체계적인 정보를 접하려 하며, 개인적 가치와 공적인 행위에서의 변화를 함께 가늠하고자 하고, 무엇보다도 자기결정능력을 소중히 다루며, 일과 놀이, 소비와 내적 성장 사이의 균형을 선호하는 데에서 전일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효율적이며 재생이 가능한 상품을 선호하고, 위조와 모방, 유행 보다는 진정성이 담긴 재화와 서비스를 선호하는 것도 간소하고 책임있는 삶의 질을 추구하는 대안문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속가능한 세계’,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인간의 노력은 생태론적 지식의 확산, 절제와 배려의 실천 윤리, 그리고 생태적 감각의 회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특히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생활세계에서 감각을 통해 살아있는 생명을 느끼고, 그 생명에게 특별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감정의 능력을 키우는 것, 즉 생태적 감수성의 확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태적 감수성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 ‘이전의 그 곳’과 ‘이후의 저 곳’에서의 삶과 연관되어 있음을 느끼고 지속을 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은 연관과 순환의 체계를 떠나면 개별적인 차원에서 죽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으나, 연관과 순환의 체계에서는 개별적인 차원을 넘어서 ‘이전, 그 곳’, ‘이후, 저 곳’에서 또다른 존재로 전달되고 발전되면서 죽음을 벗어나 삶을 지속하게 된다. 여기에서 인간의 삶을 이어주고 매개하는 전달통로가 기술적이고 상징적인 체계를 지니고 있는 문화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 사회에서 대안문화로서의 생태적 문화는 생태적 순환을 파괴하고 생태위기를 심화시키는 삶 대신에 공생적이고 자족적이며 생태적인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고자 현재진행형 상태에서 변화을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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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에서 ‘미적인 것’이란 ‘예술과 관계된’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특히 유미주의자들의 관심사인 ‘사회적으로 보다 뛰어난 측면에서의 예술과 관련된’ 것은 더욱이 아니다. 협의의 예술을 지칭하는 ‘미적인 것’은 세계의 지속가능성과 관련해서는 단지 부차적인 것으로 나타날 뿐이다. 여기에서는 ‘미적인 것’, ‘미’를 좀 더 광의적으로 감각들을 통한 감정의 능력과 관계되어 있으며,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공통된 것으로 사용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