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칼럼

박동섭(이동연구소 소장/독립연구자)

‘정직’은 나를 위한 축복의 메시지-윤리적이라는 것에 대해 근원적으로 묻기

박동섭(이동연구소 소장/독립연구자)

츠쿠바(筑波)대 유학시절 나의 지도교수이자 학문적 스승인 모로 유지(茂呂雄二) 선생의 대학원 수업은 아주 독특했다. 비고츠키를 가장 제대로 잘 이해하고 있다 하여 '일본의 비고츠키'라 불리는 선생은 수업이나 논문지도 때 비고츠키에 대해 이렇다 할 이야기를 거의 들려주지 않았다. 선생이 제대로 들려주지 않은 것은 비고츠키 뿐만이 아니었다. 한 번은 언어심리학 수업에서 '교실담화분석'을 다룬 적이 있는데, 이때에도 선생은 담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준 기억이 없다. 결국 비고츠키든 교실담화 분석이든 스스로 책을 읽거나 논문을 읽으면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선생의 수업에는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평가방법이었다. 모로 선생은 수강생들의 점수를 직접 매기지 않고 수강생 스스로 매기는 자기평가 방식을 취하였다. 지각이나 조퇴를 해도, 과제를 제출하지 않거나 심지어 수업에 잘 나오지 않았어도 수강생 스스로 ‘A’라고 자기평가를 하면 그대로 성적표에 기록이 남았다. , 선생은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말하였다. “그런 일을 하면 나중에 다른 곳에서 반드시 '세금'을 내게 될 것이야.”

 

당장은 타인의 감시나 평가로부터 도망갈 수는 있지만, ‘성적을 속인 얍삽한 인간이라는 자기인식으로부터는 도망갈 수 없다. 대개 다른 사람을 속이고 이기적 행동으로 자기이익을 쫓는 사람은 그런 일을 하는 게 자신뿐이고, 타인은 가능한 한 법과 질서를 지키고 도리에 맞게 행동하기를 바라게 된다. 예컨대, 고속도로가 막혀 있는 명절 날 갓길을 달리는 운전자나 무더운 여름날 밀면집 앞에서 줄서 있는 사람들 사이를 새치기하는 이의 입장에서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 뿐'일 때 가장 많은 이익을 얻게 되고, 모두가 자신처럼 행동하면 어떤 이익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이 세상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가능한 한 없기를 무의식적으로 바라게 된다.

그러나 그 저주는 곧바로 자신을 향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은 사활이 걸린 중요한 분기점에서 무의식적으로 자멸하는 쪽의 패를 뽑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현재를 살아가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채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창조라는 행위에 과도한 배타성을 부여하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나 사례가 이 세상에 가능한 한 없어야 한다는 저주를 자기 자신에게 걸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다. 가령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지적소유권’, ‘진정한 ○○등을 강조하곤 하는데, 그건 이데올로기의 부산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의 또 다른 스승 우치다 타츠루 선생은 나와 같은 사람만 존재하는 세계에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으며, 가능한 한 그것이 아주 쾌적한 방식으로 자기를 구축하는 것이 윤리의 궁극적 요청이라고 말한다. 이 세계에 나와 같은 정직한 사람만 있으면 좋으련만하고 바라는 것이 자신에게 부여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의 메시지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만 있다고 하면 미쳐버리게 되고, 타자가 없는 세계에 사람은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나와 같은 사람만 있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 가능하려면 한 명의 인간 안에 다수의 타자들이 두루 섞여 있는 인간을 전제해야 한다. 단지 섞여 있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다양한 자기와 공생할 수 있는 사람을 우치다 선생은 어른이라고 부른다.

 

한 사람 안에 노인, 유아, , 아줌마, 아저씨, 양심, 비열, 부지런함, 게으름, 현명, 우매 등이 혼재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자신 같은 사람만 있어도 세계는 꽤 활기를 띠고 통풍이 잘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윤리적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이런 것이 아닐까?

늘 정의의 편에 서고, 늘 정치적으로 옳고-예컨대 참교육을 외치고-, 늘 자기를 희생하면서 타인을 위해 노력하고, 어떤 험한 일을 당해도 늘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사람들만이 존재하는 상황을 윤리적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는데, 과연 그러한가? 그런 사람들만이 있는 사회는 결코 윤리적이지 않다.

 

윤리라는 말 자체는 집단을 성립시키는 방법을 의미한다. 타인을 짓밟아가며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윤리적이지 않다고 하는 이유는 그런 사람들로 형성된 집단은 얼마가지 못해 붕괴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한국은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다. 반대로 자신이 믿고 있는 정의의 개념에 기초해 그건 절대 하지 말고 대신 이것을 무조건 해!”-예컨대 주입식 교육은 무조건 나쁘니까 협력수업만 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윤리적이지 않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런 사람들로만 구성된 사회도 역시 단기간에 붕괴한다.

 

모로 선생이 학생들에게 성적을 자기평가하라.”고 했을 때 이건 뭐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라고 나를 포함한 모든 수강생들이 혼란스러워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아주 건전한 반응이었다. 자기평가보다도 조금 높게 점수를 주면 나중에 나는 좀 얍삽한 사람이 아닌가?’라고 후회하게 된다. 역으로 자기평가보다도 조금 낮게 점수를 주면 나는 너무 겸허한 인간은 아닌가?’ 하고 이 또한 자기비하로 연결된다.

그럼 어떡해야 좋을까? 의외로 크게 어렵지 않다. 모로 선생은 점수를 매기는 것은 자신이지만 타인에게 평가를 구하는 것을 결코 금하지 않았다. 자신의 점수를 알고 싶으면 주위를 둘러봐서 사람을 보는 눈이 있을 것 같은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는 몇 점 정도입니까?”라고 물어본다. 당신에게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면 그 물음에 제대로 적절한 해답을 줄 사람을 실수 없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진정한 자기평가같은 것은 이 세상에 원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주위에 드물기는 하지만 정확한 자기평가를 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에 관한 적절한 외부평가를 해줄만한 사람을 찾아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손을 열심히 비비면서 아부하는 사람들과 온통 예스맨으로 둘러싸인 사람이 정확한 자기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역으로 무엇을 말해도 당신은 바보야!”라고 말하고 야단만 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사람 역시 정확한 자기평가와는 인연이 없다.

모로 선생의 독특한 평가방법에 대한 회고를 하다 보니 인간은 자신에 대해 적절히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나에 대해 적절하게 평가해줄 사람을 찾을 수는 있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새삼 이해가 된다. ‘자기평가라는 것은 바로 그런 능력을 가리킨다.

 

다시 정직이란 무엇인가?’ 질문해보자. 지극히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개념으로 우리 의식에 자리하고 있어 더 이상 그 의미를 검토하거나 논의해보려는 시도 자체가 허망하게 여겨질 정도지만, 막상 이 물음에 답을 구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흔히들 교육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인간의 완성태로서 정직이라는 윤리적 지평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정직을 교육의 결과로 달성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적 품성으로 전제하고서, 특정 교육과정이나 교육방법을 통해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교조주의적 가르침을 행하거나 혹은 고도의 교육적 설계 하에 계발될 수 능력이라는 가정에서 일련의 통합적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모든 교육받은 인간은 정직한 사람으로 재탄생되거나 최소한 그것에 대한 개념 이해를 기초로 정직의 구현을 위한 실천을 해야 마땅할진대, 과연 사람들이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이 교육을 받으면 무언가를 알게 된다는 전제와 그런 방식으로 축적된 앎이 확실하다는 믿음, 혹은 교육을 통해 성취된 덕성이나 가치관이 나의 윤리적 행위의 절대적 바탕이 된다는 믿음을 한 번쯤 진지하게 의심해보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타인의 시선을 매개하지 않는 자기평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직이라는 이름의 나를 위한 축복의 메시지는 타인을 통해서만 나에게 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고, 인간은 해방을 얻는다.

물론 매조지의 말로서 내가 사용한 자유’ ‘해방이라는 개념 또한 많은 사람들이 별 의심 없이 당연한 듯 사용하는 것 같은데 그 양자의 개념에 대해서도 또한 이 글에서 주제로 삼았던 정직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근원적으로 따지고 물어야 할 것이다.

 

※ 이 칼럼은 관련 분야 전문가의 의견으로 재단의 사업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 라인 라인 구글+ 구글+

모든 사람에게는 따뜻한 심장이 있다 : 나는 누구의 사만다가 될 수 있을까?
최하진(무비 큐레이터)
▲ 영화 자전거 탄 소년 포스터  ©   드라마/벨기에 이탈리아/2011/12세 관람가 감독: 장-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출연: 토마 도레, 세실 드 프랑스...

꿀빨이새와 아프리카 원주민의 달콥쌈싸름한 공생
조홍섭(환경전문기자)
포르투갈 선교사 조아우 도스 산토스는 1588년 현재의 모잠비크인 아프리카 소팔라에서 본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작은 새 한 마리가 교회 벽 틈으로 들어와서는 촛대에 붙어있는 촛농을 떼어먹었다. 그래서 주민에...

어떻게 살 것인가 : 논어에서 배우는 삶의 자세
이건주(사법연수원 부원장)
I.  “당신은 어떤 삶을 살려 하나요?” “당신 인생에서 어떤 것들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기나요?”  너무 뜬금없는 질문인가요? 하지만 입시나 취업의 면접관, 혹은 친한 친구나 동료, 때로는 자신...

청소년 리더의 조건
조원고등학교
저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나눔리더 이승훈이라고 합니다. 나눔의 리더라는 호칭 정말로 마음에 쏙 듭니다. 수년 동안  봉사를 해오면서 언젠가는 나의 봉사활동에 대한 열정과 여러 봉사활동들에 대해 ...

마음 속 보석
이운진(시인)
작년 여름, 고등학교 3학년이던 딸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어. 수능공부에 지치고 잦은 시험에 자신감을 잃고 의욕마저 사라진 모습이 안쓰러워서 데리고 간 거였어. 무엇보다 마음속에 가득한 그늘과 깊어가는 우울에...

평생학습이라는 보석!?
정민승(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방송통신대 학생들을 만나보면, 너나할 것 없이 입학당시 주변의 반응은 ‘의아함’이었다고 한다. 공부가 그렇게 좋냐, 그 나이에 뭐하겠다고 대학에 들어가냐, 참 피곤하게 산다, 고 한다. 시간이 조금 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국․영․수보다 중요한 이유
김청연(한겨레 교육섹션 '함께하는교육' / NIE매체 '아하!한겨레' 담당기자)
    ‘방탄소년단’, ‘국민청원’, ‘공휴일’   얼마 전, 청소년들과 ‘5분 뉴스 찾기’ 활동을 했을 때 아이들 입에서 나온 단어들이다. ‘각자 휴대폰으로 5분 동안 뉴스를 검색해본다. 어떤 ...

교사가 인성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조아미(명지대학교 청소년 지도학과 교수)
    학교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지속적이다. 잊을만하면 시선을 끄는 사건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1년 간만 보더라도 부산과 강릉에서 일어난 청소년 폭행과 같은 사건들은 많은 사람들을...

호랑이 선생님은 왜 학교를 떠났을까 - 지혜로운 교사의 인성 교육
신규진(경성고등학교 교사/'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학교 상담' 저자)
 새해 교육과정 편성을 앞두고 교육청에서 날아온 인성교육 공문의 글귀가 눈에 띈다.  “넘버 원(Number One)에서 온리 원(Only One)으로.”  우리의 교육이 어떤 길을 걸어 왔기에 이처럼 고상한...

좋은 영화를 보면 마음이 커진다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장/'인성, 영화로 배우다' 저자)
    레니 리펜슈탈(1902~2003)은 독일의 유명 여성감독입니다. 세계 영화사에 자신의 이름을 굵게 남긴 다큐멘터리영화 감독이지만, 독일에서는 매우 논쟁적인 인물입니다. 리펜슈탈은 빼어난 재능 때문에...

4차 산업 혁명과 미래 역량 : 우리는 어떻게 ‘되어가야’ 하는가?
김지영(숭실대학교 베어드학부대학 조교수) / 「다섯 가지 미래교육 코드」 저자
I. 되어가기 Becoming의 시대   "현재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의 80~90%는 이 아이들이 40대가 됐을 때 전혀 쓸모없을 확률이 크다. 어쩌면 수업 시간이 아니라 휴식 시간에 배우는 것들이 아이들...

창의인재 교육의 핵심은 ‘쿨’한 공식이다!
이동조(창의교육그룹 아이디어코리아 대표)
인류가 아직 찾지 못한 창의성의 비밀    학교교육을 통해 ‘창의인재’를 키울 수 없는가? 물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쉬운 길을 외면한다. 힘들고 어렵고 된다는 보장도 없는 먼 길로 에둘러 돌아간다...

‘정직’은 나를 위한 축복의 메시지-윤리적이라는 것에 대해 근원적으로 묻기
박동섭(이동연구소 소장/독립연구자)
츠쿠바(筑波)대 유학시절 나의 지도교수이자 학문적 스승인 모로 유지(茂呂雄二) 선생의 대학원 수업은 아주 독특했다. 비고츠키를 가장 제대로 잘 이해하고 있다 하여 '일본의 비고츠키'라 불리는 선생은 수업이나...

학교 가기 싫은 초등학교 1학년 딸에게 배운 것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부교수)
지난 5월 내내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둘째 딸과 실랑이로 아침을 시작했다. 입학한 지 두 달이 지나면서 둘째는 그만 학교가 싫어졌다. 3월초 새 신발 신고, 새 가방 메고 매일 환하게 웃으며 즐겁게 학교를 갈 ...

‘좋은 학습, 좋은 성장, 좋은 인생’
이희수(중앙대학교 글로벌인적자원개발대학원장)
누구나 어렸을 때 한번쯤 읽었을 과학소설의 아버지인 Herbert George Wells는 그의 명작 ‘타임머신’에 빗대어 인생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타임머신을 갖고 있다. 우리를 뒤돌아보게 하는 Mem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