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 씨, 아이(RCI)
 
 2001년 공주대학교에 부임해간 이래 지난 10년 동안 매년 5월이 되면 꼭 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강의실 창문 밖에 열 지어 서 있는 아름다운 4층 높이의 다섯 그루 느티나무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 느티나무들은 비슷한 시기에 심겨졌는지 크기와 모양도 거의 비슷해서 얼핏 멀리서 보면 다섯 쌍둥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이다. 느티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제 각각이다. 다 자란 잎의 크기도 다르고, 봄에 잎이 나오는 시기와 신록의 빛깔, 가을에 단풍이 드는 순서와 빛깔, 심지어 낙엽이 지는 속도도 달라서 어떤 것은 이미 잎을 다 떨구고 나체가 되다시피 했는데 어떤 것은 아직 잎을 거의 다 매달고 있어서 한 여름을 제외하고는 제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아마 같은 종이라고 해도 유전된 형질이나 어릴 때 자란 환경이 다른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환경교육을 전공하는 나의 제자들이 학교에 나갈 준비가 되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이 느티나무의 다양성을 인지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느티나무를 관찰하는 일련의 활동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언제 무당벌레가 나타나 나뭇가지며 나뭇잎에 영롱한 노란색의 알을 낳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건강한 알은 어떤 동물 종의 지속가능성을 가능하게 하는 약속이자 희망이다. 무당벌레 알을 찾다가 덤으로 노린재 알까지 발견할 때는 하루종일 횡재한 기분으로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올해에는 5월이 끝나가는 오늘 이 순간까지 다섯 그루의 느티나무 어디에서도 무당벌레의 알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단 한번 복도에서 만난 제자가 무당벌레 알을 보았다고 알려주었을 뿐이다. 무당벌레 알의 실종이 사실이라면, 그 원인은 아마 지난 겨울의 혹독했던 추위와 초봄에 찾아온 이상저온 현상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동물에게 있어서 지속가능성의 약속이 알이라면, 식물에게 있어 지속가능성의 약속은 열매와 씨앗이다. 올 봄에 이상저온으로 인해 배와 복숭아 등 많은 과일나무의 꽃이 떨어지고, 수분을 도와주어야 할 매개 곤충들의 개체수와 활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농부들의 걱정을 사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고 하던가. 벌이 사라지고 나면 인류는 4년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이는 인류의 지속가능성이 근본적으로 어디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암시하는 분명한 경고이다. 이상저온 현상으로 생태계를 구성하는 식구들 중 하나 둘에 치명적인 영향이 생기면 그 파급효과가 어떻게 되는 올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우리는 조금 더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요즘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식물사회, 숲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하면 떠오르는 소중한 경험이 있다. 작년 가을에 환경부의 지원을 받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한국환경교육연구소, 강릉생명의숲, 백두대간보존회 등이 함께 참여하여 추진했던 고랭지 채소밭의 복원 활동이다. 강원도 강릉시 원산면 대기리의 고랭지 채소밭 60만평은 백두대간의 마루금 지역으로서의 상징적 가치뿐만 아니라 토양침식, 하천오염, 생물서식지 파괴 등으로 인해 시급하게 복원될 필요가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을 복원하기 위해서 지역 주민들과 협력하고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여 훼손지 인근에서 신갈나무 도토리 수만개를 주워 훼손된 지역에 심고 뿌리는 새로운 복원 모델을 실험하였다. 주민주도, 시민참여, 전문가지원에 의해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고 그 과정에서 지역의 마을공동체를 함께 복원하는 운동, 생태문화공동체를 치유하는 운동,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개선하는 운동이다.



 동물의 알, 식물의 씨앗에 해당하는 인류의 지속가능성의 약속은 아이들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낮은 출산율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여전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어서 문제인데, 한국은 머지않아 년간 사망자수가 출생자수를 넘어서 인구 감소의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이라고 한다. 몇 백년 후에 한국인이 소멸하여 물리적으로 지속불가능하게 되는 것 이전에, 우리 사회는 저출산으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 상황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자원을, 그것이 돈이든 시간이든 사람이든 아이를 안전하고 건강하고 평화롭게 키울 수 있는 양육 조건을 만드는 데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지도자들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이 책임과 의무가 잘 지켜지고 있는가? 글쎄.
 인간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변수는 학습기회이다. 적절한 출산률 유지가 지속가능성의 물리적 조건에 관한 것이라면, 태어난 아이들이 어떤 학습 환경에서 자라 어떤 역량과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나는가는 지속가능성의 사회문화적 수준과 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적 조건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지속가능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출산율이 높고 영유아 사망률이 높은 것도 중요한 이유이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여자 아이의 비율이 여전히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의 문맹율이 높은 사회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있어도 이웃집으로, 그 자녀들에게로 전파되지 않는다. 이웃과 자녀에게 전파되지 않는 혁신이 성공할 수 있겠는가?
 교육은 1992년 리우회의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채택된 ‘의제 21(Agenda 21)’에서 두 번째로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다. 식물의 씨앗이나 모든 동물의 알에는 엄청난 양의 유전 정보가 들어있어서 다음 세대에게 자동적으로 전수되는 지혜와 전략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정자와 난자를 통해 전해지는 유전정보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문제들에 둘러싸여 있다. 학습이 중요한 이유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어떤 사회이던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교육이 그 핵심적인 방법이자 내용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일수록 지구의 자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지구에 더 많은 쓰레기와 엔트로피를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의 양을 늘리는 것이 해결책의 핵심은 아닌 것 같다. 즉,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용을 다른 방법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변화의 키워드는 통합이다. 학교와 사회의 벽을 허물고, 교과목 사이의 벽을 허물고, 교사와 교수 사이의 벽을 허물고, 앎과 행함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지속가능발전교육의 핵심은 벽 허물기이기 때문이다.
 지속가능발전이 얼마나 제대로 이해되거나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지를 들려주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지방의제21 행사장에 와서 ‘지방의제 21’을 ‘지방의 제21’로 잘못 띄어 읽어서 웃음거리가 되었고, 내가 대통령자문지속가능발전위원회 교육소위에서 만난 교과부의 장학사는 위원회 활동이 끝날 때까지 ‘지속가능발전’과 ‘지속발전가능’을 구분하지 못했다. 5-6년이 지난 지금은 좀 나아졌는가? 글쎄.
 
2. 감성, 이성, 영성
 
식물이나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이 이 세계를 탐색하고 이해하고 반응하는 메카니즘은 크게 감성적, 이성적, 영적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감각을 통해 알게 되는 이 세계에 대한 느낌, 그리고 이 세계의 구성요소와 인과적 작동원리에 대한 체계적이고 엄밀한 이해, 마지막으로 우연적으로 보이는 것들에 존재 이유와 의미를 부여하는 초월적 깨달음과 비언어적 소통. 어느 것이 우리를 보다 안전하고 건강하고 평화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인도해 줄 수 있을까?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환경교육은 감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 느낌은 생각과 분리되어 있지 않지만 구분해서 말한다면 대상에 대한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정도에서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직접적 자연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생태적 감수성 패러다임은 우리의 이성이 자연 생태 시스템과 인간 사회의 정치경제적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 결과 우리 사회가 자연에 대해 대하는 방식은 느낌, 즉 좋아한다 안좋아한다라는 식의 선호도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그 결과 너도 맞고 나도 맞다는 식의 양시양비가 판을 치고 이성적 논쟁이 설 자리가 별로 없는 것이다. 그 반대도 역시 현실이다.
그에 비해 근대적 합리성은 도구적 합리성에 갖혀서 우리가 정말 제대로 가려고 했던 목표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신 그 목적지를 향해 어떻게 해서든 빨리 가야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만은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빨리 왔지만 우리가 원하던 곳이 아닌 경우도 있고, 고려했어야 할 많은 것들을 무시한 채 과속했거나, 천천히 걸어야 보이는 세계에 눈 멀게 된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공정무역을 말하면 순수하지 않은 것 같고, 철새 이야기를 전해주던 사람이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 주제 넘는 것 같겠지만, 지속가능한 사회는 그런 사람 그런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자연의 지속가능성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가난과 환경피해와 소외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부정부패와 무차별적 개발정책과 차별과 배제의 논리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우리의 학교는 감수성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미술, 음악, 체육을 없애고 있다. 우리의 학교는 영성도 믿지 않는다. 심지어 종교재단에서 설립한 학교에서 조차도 대학입학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영성은 헛구호일 뿐이다. 우리의 학교는 이성만 다룬다. 그 중에서도 파괴적인 도구적인 이성으로 변질되기 쉬운 것들만 가르치고 있다. 그것도 내 옆에 있는 친구를 밟고 경쟁에서 이기도록 몰아붙이면서 낱낱의 지식 부스러기를 머리속에 채워 넣도록 강요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3. 변화의 시작
 
시인 정호승이 펴낸 어른들을 위한 동시집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에 나오는 ‘기다림’이라는 시를 함께 읽어보자.
 
기다림 1)
 
돌을 땅에 묻고
물을 주면
싹이 돋을까
누나한테 물었더니
누나가 씩 웃으면서
싹이 돋는다고 해서
영월 동강에서 주워온
돌멩이 하나
꽃밭에 묻고
가끔 물들 준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희생’이라는 영화를 보면 거기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죽은 고목에 계속 물을 주면 싹이 튼다는 이야기다.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잘라 말할 수도 있다. 우리의 생, 이 세계가 언제 합리적이었던가? 우리의 생명은 우리의 의지에서 시작되고 선택된 것인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생은 늘 얼마만큼은 부조리하고, 설명되지 않는 이유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시대의 어른들이 유난히 많이 돌아가셨다. 김수환 추기경,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이오덕 선생님, 법정 스님. 그분들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역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지속가능성과 역사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시간이라는 요소이다. 미래 세대에 대한 인식. 긴 시간에 대한 상념은 개체로서의 나를 넘어서 류적 존재로서의 나를 생각하게 한다. 아버지의 아들이자, 아들의 아버지로서의 나. 가정의 달, 5월이 지나가고 있다. 가정은 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알 같고, 씨앗 같은 곳이며, 학습의 시작되는 곳이다. 따라서 우리의 가정을 파괴하는 힘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적이다. 가정을 꾸리고 돌보고 지키기가 너무 힘들어졌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분명히 위기이다. 지속가능발전교육센터를 RCE (Regional Center for Expertise)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통영과 인천 두 곳에 있다. 결국 우리의 집과 가족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출발점이고 나는 그곳을 RCI(알, 씨, 아이)라고 부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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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호승(2003)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자연을 닮은 시, 어른이 읽는 동시, 열린원.